[뉴스룸 365]재벌에게 돌을 던질 때가 아니다

2017-01-17 14:53

채명석 산업부 차장

고(故) 우정(牛汀)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1992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재벌이 사라지기까지 대략 ‘30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벌 기업들은 매년 20~30%씩 증자하고, 사업 확장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총수들이 자신의 주식을 내놓으면서 지분이 계속 떨어지며, 총수가 죽으면 상속세로 70~80%가 나간다. 따라서 30년쯤 뒤 2세, 3세 경영인이 나올 무렵에는 대기업은 ‘국민의 기업’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정은 다만 이같은 전망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를 달았다. 국가의 조세 제도가 엄격하게 지켜졌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들이 말하는 재벌 해체가 말 그대로 지금 당장 재벌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 소유의 재산이 언제까지나 한두 사람과 그 집안에만 종속될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국민에게 골고루 나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조세 제도가 투명하고 엄격하게 지키지는 국가는 국민과 기업이 정부를 신뢰하게 돼 서로가 협심해 노력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국가 경쟁력도 높아진다.

우정의 전망이 나온 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올해부터 오너 3세 경영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으며, 총수들의 기업 주식 보유량도 많이 줄었다. 주식 비중으로만 보면 모든 대기업들은 국민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재벌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 목소리는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스스로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기업들이 국가를 망친 주범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기업의 잘못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그동안 정부의 조세 제도가 엄격히 지켜지지 않은데서 찾아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국가경영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말로만 떠들 뿐, 개선의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때마다 기업, 재벌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려는 국회와 검찰, 특별검사팀의 수사는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국가경영 시스템의 또 다른 사례로 도마 위에 올랐다. 수사의 핵심대상인 정부 관료와 정치인은 뒷전으로 미루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처리 여부에만 집중하고 있다. 특검이 구성되면서 15개 수사대상을 선정했지만, 한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 삼성에만 매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박-최 게이트’가 ‘삼성 게이트’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정경유착(政經癒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정경유착은 원래 정치와 경제가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좋은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계와 정치권이 부정의 고리로 연결되는 경우를 일컫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여긴다.

이렇게 만든 원인이 기업만의 탓은 아니다. 권력을 이용해 기업을 옭아매려는 정부와 정치권에게 원죄가 있다. ‘법과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국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왜 기업이 청탁을 하고 뇌물을 바치겠는가.

재벌에게 돌을 던질 때가 아니다. ‘강요·공갈’의 피해자라는 삼성의 주장을 재벌의 변명으로 치부하지 말고,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진실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