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받지 못한 지적장애인 A씨

2017-02-05 23:28
세종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산경찰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 제출

지적장애인 A씨, 왜 경찰에 연행됐나?
상가건물 화장실에서 여성 용변 모습보고 음란행위, 죄명은 '건조물 침입죄'
A씨 가족, 경찰 조사에 의문 제기… 법률구조공단 "공소내용만으로 처벌 어렵다"
세종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적장애인 대상, 법률적 기준 판결은 모순"

 

 ▲ 세종취재본부/김기완 기자

아주경제 김기완 기자 = 지난해 출간된 '지연된 정의'는 사법체계 속에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이들이 재심을 거쳐 무죄를 받게 되는 사건들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는 삼례읍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과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 3건의 재심 사건이 실려있다.

우선 사건을 요약하자면 지난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완주경찰은 같은 동네에 살던 지적장애인 2명 등 3명을 체포했다. 경찰은 증거도 없이 이들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당시 나이 18세부터 20세였던 이들은 억울하게도 3년 6개월에서 5년 6개월의 옥살이를 해야했다.

사건을 지휘한 검사는 나중에 진짜 범인이 범행을 시인했음에도 무시해버린다. 법원이 재심을 거쳐 삼례 3인조에게 무죄를 선고한 때는 사건이 발생하고 17년이 2016년 6월이었다.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정부와 국가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짓밟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변호사들이다. 그렇다고 변호사들의 사건 일대기가 담긴 책이 아닌 국내 사법체계에 대한 고발장이었다. 필자는 그 책을 읽으면서 한국 사법부의 그릇된 수사와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아주경제>가 4일 보도한 지적장애인 A씨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적장애 2급 장애인을 상대로 경찰 조사를 꾸미면서도 법률적 약자라는 점을 망각하고 진행됐다는 점에서 공분의 대상이 대고 있다. 세종시 장애인권단체는 "부산경찰 수사(조사) 과정의 체계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과정에서 이뤄진 모든 자료의 열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지적장애 2급인 A씨가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는 것에 많은 의구심이 드는것은 사실이다. 기자도 이 사건을 제보받고 취재를 하면서 처음으로 물어봤던 얘기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 A씨 가족은 "그가 평소에도 TV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서 종이에 받아적고,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였다"고 증언했다.

김지혜 세종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적 장애인의 특성상 지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학습능력과 기억력, 기술습득 능력이 뛰어나기에 기차를 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A씨는 현재도 2년째 공장을 다니며 조립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반복적인 노동에 집요함과 기술 습득이 빨리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런 A씨가 세종시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갔다는 점 때문에 좀 어눌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경찰입장에선 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A씨가 소변을 보기 위해 단지 화장실에 있었고, 음란행위의 모습을 목격하거나 그에따른 증거가 확보되지 못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처음부터 A씨에 대한 경찰 조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2014년 서울시 은평경찰서는 북한산 등산로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발달장애인 3급인 30대 이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북한산 등산로에서 여성 등산객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던 것이다.

당시 경찰은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현장에서 붙잡은 이씨를 '변태성욕자'로 규정, "시민의 신고 접수 후, 한달 간의 잠복근무 끝에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씨가 "여성 등산객의 비명소리에 더 큰 흥분을 느껴 자위행위를 하고 범행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없었다. 사건이 부풀려졌던 것이다. 경찰은 뒤늦게 "확인된 사실이 아니며, 일부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하면서 "진술 당시 말투가 어눌했지만 특이사항은 없었고, 피의자 부모가 온 뒤에야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처럼 법에서 지적장애가 인정 돼, 지적장애인으로 등록한 것인데 범죄를 했을 것이란 무리한 조에서 다른 가능성은 배제한 채 수사를 몰고 간 셈이됐다. 경찰의 직무유기로 볼 수 있다. 사건의 패턴은 달랐지만 A씨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8월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전혀 접목된 조사가 아니였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지적장애인 A씨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조사가 진행됐던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경찰조사 과정에서 조력자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등 노력했어야 할 경찰이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고, 직접적 증거없이 오직 범죄를 했을 것이란 추측만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한다. 그것도 지능이 10살 꼬마아이 수준에도 못미치는 지적장애 2급의 장애인을 상대로 음란행위에 따른 '건조물 침입죄'란 조사를 꾸미면서 말이다. 경찰의 조사대로 상가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갔던 지적장애인 A씨가 3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게 될 상황에 이르러 억압과 강압은 없었는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