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아이의 질문은 과학의 마중물…상상 가득한 '과학 마을'
2016-12-22 06:00
사이언스 빌리지 | 박근혜의 권력 중독 |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사이언스 빌리지' 김병민 지음 | 김지희 그림 | 동아시아 펴냄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른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부끄러운 말 중의 하나다. 여러가지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 기저에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왜 그런 것까지 꼬치꼬치 캐묻니? 복잡하게시리…'라는 심리가 깔려있을 테다.
'사이언스 빌리지'는 그래서 소중한 책이다. 자동차 브레이크등은 왜 전부 빨간색인지, 맥주병과 소주병은 왜 각각 갈색과 초록색인지, 강아지는 왜 양치질을 안 하는지 등을 묻는 아이 앞에서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해는 금물이다. 이 책은 아이에게 '과학 지식'을 뽐내거나 단순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질문을 매개체로 함께 상상하고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호기심은 질문으로 구체화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이의 질문은 과학의 마중물인 셈이다.
대학·대학원에서 과학을 전공한 '평범한' 아버지 김병민은 자신의 아이가 어릴 때 던졌던 질문, 함께 나누었던 대화 등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과학 지식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의지를 북돋아주는 어른과 호기심으로 더 넓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의 모습은 '과학, 그게 별건가요?'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 마을'이라는 제목처럼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 학문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가정, 학교, 마트, 영화관 등 주변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질문하고 대화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엄마는 수십 가지 두루마리 휴지 앞에서 어느 것이 좋을지 한참을 따진다. 그저 '싸고 하얀 것'이 좋아 보이는 아이는 엄마에게 "휴지를 왜 그렇게 오래 고르는 거예요!"라며 짜증을 내지만, 아빠는 "천연 소재, 증백제, 표백제가 덜 사용된 것을 고르느라 그렇다"며 아이를 설득한다. 형광물질이 무엇인지, 그게 왜 몸에 나쁜지 그리고 형광은 어떤 원리로 빛을 내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저자의 '꿀 설명'이 내내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상대성 이론, 오로라 원리, 주기율표, LED 등 철옹성 같은 과학지식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먼지 내려앉은 고색창연한 과학책을 책장에서 빼내고 싶을 만큼 '소장욕구'를 높이는 교양서다. 아, 저자가 직접 그린 표지그림과 시원시원한 판형(210×297) 때문만은 아니다.
260쪽 | 2만2000원
◆ '박근혜의 권력 중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 저술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를 그냥 지나칠리 없다.
강 교수는 엄청난 범죄와 거짓을 일삼고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려는 박 대통령이 심각한 권력 중독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그녀의 권력 중독과 집착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그녀에게 놀아난 대한민국은 급기야 비극의 나락으로 침몰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박 대통령에게 '의전 대통령'이라는 진단도 내린다.
그가 말하는 의전 대통령이란 '독자적인 의제와 비전 없이 권력 행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상징 조작'을 뜻한다. 그에 따르면, 박근혜는 여성임에도 대통령답게 보이는 의전적 자질의 소유자였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18년간 청와대에 거주하면서 익힌 의전 감각, 어머니의 사후 5년간 의전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으면서 갈고 닦은 실력이 있었다. 박근혜는 대통령의 비전과 콘텐츠 대신 외적인 '의전 자본'을 키우는 데에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는 재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강 교수는 박 대통령의 '의료 스캔들'에도 '의전 자본'의 관점을 적용하며 "단순한 '약물 주사 중독'이 아니라 대통령답게 보이고자 하는 자신의 의전 자본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 몸부림"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전 본능은 세월호 참사 때 '올림머리 손질'을 하는 등의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주장과 구호에만 그친다면 '강준만'이 아닐 터. 그는 '자유로운 시민 제보자들의 사회'라는 실천 방법론을 제안한다. 기존 국가운영 패러다임이나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말도 옳지만, 구체적 대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든 공익을 위해 자유롭게 제보할 수 있는 사회라면 '박근혜 게이트'는 오래전에 발각되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를 위해 기업들이 자신들의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대신 '공익 제보자 보호기금(박근혜 기금)'을 만들고, 민관을 막론하고 공익 제보자에 대한 보호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추가 법률(박근혜법)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강 교수는 그러면서 "'(공익 제보자들의 행위를) 진정한 용기라고 칭송하다가도 곧 식는다. 대부분 안타까워하거나 자책하는 정도이며, 그마저도 잠깐인 경우가 많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탄핵' '퇴진' 등에만 쏠려있던 촛불민심의 관심이 '공익 제보자 보호'라는 장기적 관점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강준만은 그래서 '강준만'이다.
216쪽 | 1만3000원
◆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 마크 블라이스 지음 | 이유영 옮김 | 부키 펴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시장의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신자유주의는 힘을 잃었고 케인스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주요 국가 정부는 대규모로 은행 구제에 나섰으며, 각종 사회보장제도들을 입안·강화했다. 미국 브라운대 정치학과 교수인 마크 블라이스는 이를 '거장의 귀환'이라 칭한다.
하지만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이내 '반격'이 시작됐다. 이들은 "경제부양책을 멈추고 '확장적 재정건실화'로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G20은 공동성명서를 채택하고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중단을 촉구했다. 잠시 귀환했던 케인스주의는 곧바로 '긴축' 기조로 바뀐 것이다.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국가부채' 위기는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에 번졌고 같은 해 5월 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과 차관을 제공하면서 이들 국가들에게 공무원 임금, 연금 등을 비롯한 공공지출 대규모 감축을 요구했다. 여기에 미국 의회도 재정적자에 대한 공격에 나섰고, 2012년에는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불가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레블 동맹'이라 불리는 국가들에서까지 긴축정책이 시행됐다. 바야흐로 긴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현재 미국과 유럽 경제 최고의 화두인 긴축정책의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정리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일부 경제학자들과 언론들에 의해 유포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기억해야 할 교훈들을 이끌어 낸다.
저자는 유럽 재정 위기의 사례들을 분석하며 잘못된 은행 시스템과 유로화라는 통화제도가 겹쳐져서 만들어진 은행 위기가 그 본질임을 밝힌다. 결국 재정 위기의 해결책으로 각종 공공 지출의 대규모 삭감을 요구하는 긴축정책은 은행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플레이션과 국가부채를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고와 긴축이 국가신뢰도를 높여 투자를 활성화시켜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생각에 경종을 울린다. 1930년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험과 최근의 사례들은 긴축이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단히 위험천만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방증한다.
544쪽 |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