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가사 노동' 간과한 페미니즘 논의는 헛것
2016-12-15 06:00
아내가뭄 | 박근혜 무너지다 | 중년을 위한 창업의 정석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아내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 펴냄
"이혼 즉시 남자의 가사 노동량은 주당 약 10시간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여성에게 이혼은 남성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남편과 이혼한 후에 집안일을 일주일에 6시간 덜 했기 때문이다."(본문 199쪽)
호주의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은 가사 노동 불평등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분석하며 이 같이 말한다. 크랩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노동' 문제로 취급하지만 집안에서 벌어지는 노동 문제는 단순한 '집안' 문제로 치부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고위직 진출을 도와줄 사람, 즉 '아내'가 집안에 부족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의 일갈은 '아내부족'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저출산 문제를 비롯해 젊은층의 감소와 노년층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부담의 확대, 장기화된 불경기와 저성장 등 수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호주의 28대 총리인 토니 애벗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돕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지만, 정작 그의 내각에는 단 한 명의 여성만 입각했을 뿐이었다. 이에 심각성을 느낀 크랩은 '아내의 유무와 사회적 성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OECD 국가의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남편 2시간 21분, 아내는 4시간 33분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편 40분, 아내 3시간 14분으로 무려 다섯 배 차이가 난다. 통계에 따라 열 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가사 노동을 이야기하지 않고 과연 페미니즘을 논할 수 있느냐'는 저자의 분노는 일리가 있다.
저자는 "유리천장이 아니라 유리 비상계단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태껏 '직업 세계에 진입하는 여성 수 늘리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가사 노동에 진입하는 남성 수 늘리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거론되지 않았던 매우 색다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착화한 성(gender) 불평등 문제는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432쪽 | 1만7500원
◆ '박근혜 무너지다' 정철운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
2012년 170일간의 MBC 노조 파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했던 정철운이 이번엔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합세해 불의(不義)한 정권에 공동전선을 펼쳤던 '전투' 현장을 기록했다.
이 책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지난 10월 초부터 더듬기 시작해 같은 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1차 대국민 담화, 26일 새누리당의 최순실 특검 수용 등에 이르기까지의 '혁명'을 다룬다.
지난 10월 7일은 한 누리꾼(SBS CNBC 김형민 PD)이 페이스북에서 모든 포스팅 끝에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붙이기 운동을 제안해 큰 호응을 얻은 날이다. 이 캠페인은 수많은 누리꾼과 시민들을 규합하며 언론보도에 결정적인 자극을 주었고, 시민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슈가 묻히지 않도록 일조했다.
공교롭게도 37년 전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날인 10월 26일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때가 박 대통령 퇴진의 '전반전'이 끝난 시점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조차 사설을 통해 "부끄럽다"는 네 글자를 내보냈을까. 저자는 "박근혜 권력은 사실상 이날 골대가 무너져 내렸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헌법을 수호하고 상식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갈망한 기자와 시민이 이루어낸 승리의 역사를 누군가는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며 입에 담기도 수치스러운 이 '오욕'의 과정을 마치 전쟁소설을 쓰듯 간결하고 힘 있게 전달한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보수의 동맹자들을 갑을관계처럼 무시하고 하대한 심리적 배경을 비롯해 보수정부의 조언자를 자처한 '일등신문' 조선일보사가 TV조선을 통해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로 변신하는 과정, 손석희 영입을 시작으로 젊은 세대를 겨냥해 팩트 중심 보도에 나선 JTBC, 청와대가 새누리당 의원과 MBC를 동원해 조선일보를 침묵시킨 상황, 최순실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첫 보도 이후 힘이 달린 한겨레가 조선일보에 동맹을 요청한 사건 등을 하나하나 훑어나간다.
광장의 촛불은 이제 박 대통령 퇴진의 '후반전'을 위해 헌법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이 책에 또 다른 부제를 붙인다면 '헌법 제1조 2항'이 어떨는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300쪽 | 1만5000원
◆ '중년을 위한 창업의 정석' 김준호 지음 | 에밀 펴냄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창업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40대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이어지며 이 비율은 점차 높아질 전망이지만, 규칙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이들이 '제2의 직업'으로 창업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업종,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하는 상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트렌드 등으로 창업한 가게 4곳 중 1곳이 2년 안에 문을 닫고 있다. 이렇게 냉엄한 창업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소기업청, 서울시 신용보증재단 등에서 15년간 3000건이 넘는 창업 컨설팅을 해온 저자는 창업하기 전 반드시 고민해야 할 것들부터 창업 아이템 선정하는 방법, 마케팅, 세금 절약하는 법, 정부지원금 받는 법까지 창업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직접 보고 들은 안정적 창업의 사례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사례 등을 풍부하게 들어 중년창업의 실제적인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한다.
저자는 창업자들의 성공과 실패를 목격해 오며 창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본인만의 기술이나 독특한 창업 아이템으로 성공한 사례, 특별하지 않은 메뉴로 주위 상권을 장악한 사례 등 여러 경우가 있지만 그들이 성공을 이루어낸 방식에는 창업 전부터 꼭 다져야 할 '정석'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업상담을 위해 저자를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세금계산서가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 책은 세금·사람 관리, 지출·수입 계산하기 등 평범한 직장인들이 부딪히는 최소한의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낸다.
저자는 "중년창업은 책임은 큰 반면, 시간도 경험도 이기기 부족한 게임"이라며 "그동안 살아오며 몸에 밴 것들을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짝 대박' 사업보다 내실 있는 사업을 지속하고 싶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창업 교과서 같은 책이다.
276쪽 |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