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보복,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제조·유통업 ‘진퇴양난’

2016-12-04 17:46

아주경제 김봉철 기자 =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행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한류 등 한국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문화콘텐츠 사업부터 시작됐던 경제 제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기점으로 제조·유통업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태양광 발전 등 미래를 위한 신성장 산업 부문에서 중국 정부가 갑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각종 규제가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국기업 길들이기의 연장선상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소비자들의 심리가 한국산 배척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임직원들에게 어느 때보다 고객 대응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전운이 감돌았던 업종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이다. 4일 재계와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공고한 ‘전기차 배터리 업계 규범 개정안’에서 배터리 업체 연간 생산능력 기준을 80억와트시(Wh) 이상으로 제시했다.

기존 2억Wh에서 40배 올려 잡은 것이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최근 2년간 전기차 배터리 관련 중대 안전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신설 조항까지 넣었다.

개정안대로라면 기준을 충족시키는 회사는 중국 1위 업체인 비야디(BYD) 뿐이다. LG화학·삼성SDI의 중국 내 생산 능력은 다 합쳐봐야 연 20억~30억Wh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결국 인증을 받으려면 2~3배 이상의 설비를 확충해야 하는데, 갑자기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금액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증설을 한다고 해도 인증 통과를 자신할 수 없다.

올해 안에 중국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던 SK이노베이션은 관련 일정을 저면 중단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그나마 이번 개정안에서 인증 통과를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은 빠져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태양광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한화케미칼, OCI는 갑작스런 중국발 반덤핑 부과 결정으로 타격을 입게 됐다.

중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2014년 1월부터 2.4~48.7%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추가로 반덤핑 재조사에 착수했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집전판의 원재료가 되는 물질로 ‘태양광 업계의 쌀’로 불리는 소재다.

코트라(KOTRA) 상하이무역관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연간 16만9000t으로 중국 시장에서 57.7%를 점유하고 있는 4개 중국 기업 제소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수입산 폴리실리콘 시장 1위는 한국(연간 8억3300만 달러)이다. 이 가운데 OCI는 생산량(5만2000MT)의 85%인 4만5000MT을 중국에 수출한다. 한화케미칼도 중국 비중이 70% 선에 달한다.

LG화학과 손을 잡고 ‘대륙 공략’을 계획하고 있던 현대차도 비상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일렉트릭 등을 비롯해 모든 친환경차의 배터리를 LG화학에서 공급받고 있다. 내년에 출시가 예정된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차 K5 PHEV 모델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배터리 공급업체를 바꾸려면 차량 설계 자체를 변경해야 된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업계와 현대차 입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기준을 낮춰 개선안을 내놓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내년도 사업 계획도 중국 정부의 고강도 세무조사로 미궁에 빠졌다.

롯데그룹 7개의 계열사는 총 3조원을 투입해 선양에 서울 제2 롯데월드 같은 대형복합단지를 조성하는 ‘롯데타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일반 유통사업만 해도 롯데그룹은 중국에 5개 백화점과 116개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롯데에 대한 조사는 사드와 관련한 보복 조치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든 것은 맞다”면서도 “현지에서 접수되는 민원을 접수하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