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미학]얼고 녹기를 수십번, 풍파 견뎌내니…비로소 너로구나
2016-11-21 00:00
바다내음 혀 끝을 감싸는 겨울철 별미 '과메기'
아주경제 기수정 기자 =“과메기? 그게 뭔데? 메기 종류인가?”
5~6년 전이었을까. 찬 바람이 온몸을 감싸던 어느 겨울 날, 친구가 사는 포항을 찾았다.
‘그게 왜 먹고 싶은 걸까. 말만 들어도 비릿한 맛이 혀끝을 감싸는 것만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를 따라나섰고 물미역에 과메기 한 점과 마늘, 초장을 얹어 정성스레 싼 쌈 하나를 권하는 친구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해 받아먹었다.
반전이다. 한 입을 베어 문 순간의 비릿함이 몇 번 씹은 후 고소함으로 변해 입 안에 가득 퍼지다니… 이 오묘하고도 신기한 과메기의 맛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이었다.
과메기는 청어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뜻의 ‘관목'(貫目)에서 유래됐다. 관목에서 'ㄴ'이 탈락하고 목의 구룡포 방언인 ‘메기’가 붙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고, 생선을 새끼로 꽈 꽈배기 모양으로 엮어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동해안 지역에서 한겨울에 아궁이 위 천장에 꽁꽁 언 청어를 걸어두고 불을 피우면 열과 연기가 올라가 청어를 녹이고, 열기가 식으면 청어가 다시 어는 과정을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꾸덕꾸덕 맛있게 건조된 과메기를 맛볼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청어가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지 않아 꽁치로 대체됐지만 여전히 과메기는 맛있는 건강식이다. 청어에 기름기가 많다 보니 꾸덕꾸덕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꽁치로 대체된 이유 중 하나다.
과메기는 11월 말에서 그 이듬해 2월 사이가 제철이다. 과메기가 되기 위해선 3~4일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소금기 머금은 겨울 해풍과 차가운 바람에 밤에는 얼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낮에는 녹기를 반복해야 비로소 제맛을 낸다.
물론 특유의 비릿함은 있다. 그렇다고 맛도 보기 전에 손사래를 칠 필요는 없다. 비릿함이 싫은 이들은 김, 배춧속, 상추, 김치, 깻잎 위에 과메기를 얹고 그 위에 쪽파와 마늘, 미역, 고추 등을 초고추장에 찍어 싸 먹으면 비린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맛에 익숙해질 즈음 처음의 비릿함은 점차 고소함으로 변한다.
과메기의 본산지는 경북 포항이다.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80%는 포항이 차지한다. 포항에서도 구룡포 지역은 과메기 대표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좋은 품질의 과메기를 얻으려면 영하 4도, 영상 10도를 유지하고 바람은 풍속이 초당 10m가 돼야 하는데 구룡포가 바로 이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덕이다. 참고로 바람이 세게 불면 꽁치가 겉말라 비린 맛이 강하고, 또 기온이 너무 높거나 낮아도 꽁치의 지방과 수분이 고루 스며들지 않아 과메기의 참맛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영양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연구 논문에 따르면 포항 과메기는 불포화 지방산과 아스파라긴산, 핵산, 비타민, 칼슘, DHA, 필수 아미노산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심근경색 예방, 노화 방지, 골다공증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성인병에 특효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과메기를 찾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맛과 영양을 잡은 웰빙 음식이지만 가격은 20마리 기준으로 1만6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20마리면 4인 가족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배불리 먹고도 남을만큼 많은 양이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퇴근길 식당에 들러 과메기를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음식이 돼주기도 한다.
대륙의 차가운 북서풍이 영일만과 호미곶의 능선을 타고 변한 해풍. 이 해풍 덕에 부패하지 않고 맛 좋은 건강식품으로 탄생한 과메기. 맛 좋고 영양 풍부한데 가격까지 저렴한 과메기야말로 자연이 빚은 건강한 선물이 아닐까.
이 즈음이면 시장에도 구룡포 과메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구룡포 과메기와 갖가지 채소를 사가지고 들어가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 가득한 시간을 보내리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