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新지도가 필요하다]⑦ "중국이 세계경영을 해본 나라라는 인식이 중요"

2016-11-03 09:59
최진석 서강대 교수 "선진국 경험해본 중국, 세계를 전략적으로 바라봐…한국은 전술적으로움직여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중국은 세계를 좌우할 큰 나라가 되는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세계를 좌우했던 기억들을 다시 회복하려는 거다.”

도가사상을 연구하는 동양철학의 대가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의 말이다.

최 교수는 “단순함에 빠지면, 우리의 운명을 상대방의 선의에 맡겨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는 우리 힘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판조차 펼치기 불가능한, 매우 처참한 지경에 이미 빠져 있을 것이다”며 현재의 우리 현실을 우려했다. 우문에 대한 현답을 듣는 시간이 꽤 길게 이어졌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중국은 선진국의 경험을 한 역사를 가진 나라인 점을 우리가 인지해야 한다며, 세계를 전략적으로 들여다보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 중국, 어떤 나라인가.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이 신비스럽거나 중국이 전혀 다른 논리를 구사해서가 아니다. 중국과 한국이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격차가 있다. 즉, 중국이 사용하는 높이의 시선과 우리가 사용하는 높이의 시선이 같지 않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온 도교 도사를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의 도사들은 제도권 교육을 거의 받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도관(道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의 이 도사를 한국에서 잠시 만났는데, 내 전공이 철학이라고 하자 그는 대뜸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35년 이상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이하다거나 운명철학 등으로만 반응을 보였을 뿐, 철학자가 ‘국가 발전의 기초’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반응을 들어본 적 없다. 충격이었고, 이것이 중국 사유체계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철학자가 국가발전이나 정치 문제, 도시환경을 이야기하는 경우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마치 철학자는 초월적 이야기를 하고 현실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해야 더 철학자로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 도사의 한마디는 중국과 중국 사람에게는 철학과 국가 발전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학은 현실 너머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철학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포함해 현실과 분리된 것, 현실 너머에 있는 것, 혹은 현실이 충족되고 나면 누리는 것으로 철학을 인식한다. 이는 중국은 철학·문화·예술·현실이 한 덩어리로 작동한 시대를 겪은 반면, 한국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거리를 걷다 보면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글자가 바로 ‘문화’다. 이것이 중국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보면 된다.”

▲ 중국과 한국의 차이를 알고 싶다.
“중국은 선진국을 운영해 본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운영해 본 기억이 없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중국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제국을 운영해 본 기억이 있다. 중국은 세계를 보고 관리한 시대가 있어 최소한 선진국적 수준의 시선은 항시 유지되고 있다. 감히 이야기하건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일류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에서 일류 정치·교육·언론·기업이 무엇인지 모른다. 일류가 무엇인가. 중진국 단계까지는 경제·경영학적 통찰(Insight·인사이트)이 사회를 지배한다. 그러나 선진국은 철학 등 인문학적 통찰이 근본적인 시선이 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지식 생산국이었다. 우리나라는 지식 수입국으로 대별할 수 있다. 지식을 생산하는 핵심 추동력은 바로 철학적 시선이다. 철학적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볼 능력 여부에 따라 세계를 보는 전략적 기획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나라를 일반적으로 전략국가, 그러지 못한 국가는 전술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선진국을 운영해 본 기억이 없는, 즉 전략적 시선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거다. 대개 우린 전술적 측면에서만 움직인다.”

▲ 앞으로의 중국, 어떻게 나아갈 지가 궁금하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두 번의 축복이 있었다. 최초의 축복은 불교가 들어온 것이며, 두 번째 축복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유입된 것이다. 중국의 사상사를 보면 자체 이데올로기가 한계에 닿으면 자의든 타의든 외래사상이 들어와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 중국인들은 외래에서 온 것을 과감하게 수용한다. 불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주자학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청나라 말, 사상적 위기를 맞았다. 사상적 위기는 곧 국가적 위기와 직결된다. 빗대어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기도 사상적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청나라 말, 중국이 사상적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중국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채택된 것이 서양세계관 중 최첨단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다. 중국의 역사는 비유컨대 ‘접이부채’와 같다. 같은 유형의 패턴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중국 사람들이 불교를 수용해 어떻게 소화했고 소화한 다음 어떻게 나라를 끌고 갔는지, 그 패턴을 잘 연구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서양철학을 어떻게 소화해 어떻게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고 중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그 패턴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 ‘사상의 위기’의 실체가 궁금하다.
“단순함에 빠지면, 우리의 운명을 상대방의 선의에 맡겨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는 우리 힘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판조차 펼치기 불가능한, 매우 처참한 지경에 이미 빠져 있을 것이다. 북한 핵을 보는 눈마저도 순진한 낙관론과 단순함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그것을 우리에게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나, 북은 핵무기를 개발한 적이 없다고 보는 인식이나, 개발할 능력이 없다는 예측이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누구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은 매우 피상적이다. 심리적 희망 사항을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고 있다. 단순함과 낙관론에 빠진 지성의 폐허다. 희생적이고 매력적이어서 내 가슴을 떠나지 못하는 지도자들에게 그런 흔적이 있으니, 그 안타까움이란 다산에 대한 것만큼이나 크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조차 일본에 대해 섣부른 평가를 내렸고, 불과 70년 뒤에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를 동네 정비사업 다루듯이 하는 얇은 지성을 벗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독립적 사유를 시도하는 지성의 두께를 갖출 일이다.”

▲ 중국몽은 이미 시작됐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 아직도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중국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단순한 사고 속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을 대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표현은 대등한 입장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절대 대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을 관리하려고 한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배후에 있는 문화적 사유 습관을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다. 시진핑 때 와서야 ‘중국몽’이 완전히 실현된 게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항상 제국을 유지해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을 의식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중국은 세계를 좌우할 큰 나라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좌우했던 기억들을 다시 회복하려는 나라다.”

결국 중국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를 더 잘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사대(事大)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나쁜 거다. 자기 힘이 그렇게밖에 안 되니 사대라도 하는 거다. 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살기 위해 하는 이것을 마치 굴욕이란 인식 없이 국제관계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사대라는 당연한 구조 속에 살면서 기득권 지키기에 바빠 사대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근면성실하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용감한 적이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대를 선택해 목숨이라도 유지한 것이다. ‘사대도 국제관계의 한 형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종속적이고 굴욕적인 상황 속에 있는 것을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중국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군사력을 동원해 강제로 제압하고 굴복시키지 않았다. 조선이 중국을 제국으로 떠받들었다. 최근의 ‘사대논쟁’이 다시 불거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친중이나 친미 가운데 선택하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더 문제다. 용중과 용미를 통해 한 단계 위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강정숙 기자

최진석 교수는
1959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며 현재 '건명원'인문학 운영위원으로 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학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석사 △베이징대학교 대학원 도가철학 박사 △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동아시아학과 방문교수 △ 건명원 인문학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