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멀어지는 한중관계 회복을 위한 단상
2023-06-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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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면서 한국 사회를 뒤흔들며 한·중 관계는 더욱 냉각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하기 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면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언급은 한·중 관계 악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싱 대사 발언을 정치권이 정쟁화∙이슈화하면서 한·중 관계를 살얼음판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주재국 대사로서 부적절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당연히 우리 외교부가 항의와 주의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등 정치권의 발언과 주장은 한·중 관계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로서 우리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이 이란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 ’남북 관계도 미국과 협의가 필요하다‘ 등 무례한 발언을 했을 때도 대사 추방설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2021년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 총괄공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성적 비하 발언을 했을 당시에도 ’페르소나 논 그라타[(PNG·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외국 공사가 다른 국가 원수를 모욕한 전례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모두 일본 정부에 사과를 강력히 촉구했지만 지금처럼 대사의 강제 추방 조치를 정치화하지는 않았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에 친미탈중(親美脫中)의 굴곡되고 편향된 정서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점차 심해져가는 국내 반중 여론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한·중 관계가 미·중 충돌과 대립이라는 상수에 따라 급변하는 하부 변수로 전이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을 출간했다. 우리 경제 및 한반도 이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관련 내용은 1쪽 미만으로 일본의 3쪽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 한·중 관계를 표현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도 빠져 있는 등 전반적으로 날카롭고 강력한 어조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 주권과 권익에 대해서는 국익과 원칙에 기반하여 일관되고 단호하게 대응하고, 현안 관리를 위한 상시 소통 체계를 가동한다'라고 되어 있다. ‘친미탈중’이 국익에 기반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중 관계는 지난 5000년 역사 속에서 숱한 굴곡을 겪으며 함께 성장해 왔고 여전히 우리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단시일 내에 중국을 대체할 시장과 파트너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안보 이슈가 중요해지는 만큼 중국과의 공급망 협력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상시 소통 체계를 가동한다’는 말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금의 꽉 막혀 있는 한·중 간 외교안보 및 경제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서로 다른 방향과 목표를 주시하는 상황에서 서로 만나 대화할 의지와 관심도 없어 보인다.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국익을 위한 외교는 결코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지경학적 관점에서 미·중 양국에 전략적 자산으로서 매우 중요한 국가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한·미 동맹이라는 명분 아래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할 것이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그러한 의도를 알기에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 경제 제재 등 상반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미·중 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는 국익에 근거한 전략적 균형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겐 그 어느 국가도 우리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국력과 전략적 자산이 충분히 있다.
결국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이 우리 국익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구체화되고 더욱 심화될수록 우리 내부 역량 강화를 통해 외부의 리스크를 방어해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념적 대립과 충돌인 남남 갈등, 독자의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펼쳐지고 있는 미디어의 미국 중시·중국 경시인 ’중미경중(重美輕中)‘ 보도 경쟁 등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한반도의 복잡 다양한 국면을 국가 리더인 대통령 혼자서는 분명 다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좀 더 균형적인 시각과 국익의 관점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을 수용해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일부의 전문가 집단과 역량의 목소리를 넘어 다양한 전문가들의 살아 있는 정보와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미·중 대립 속에 단순히 미국적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중국 사학자인 사마천은 지난 3000년 역사를 정리한 사기에서 ’안위재출령(安危在出令) 존망재소용(存亡在所用)‘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의 안정과 위기는 어떤 정책을 내느냐에 달려 있고, 존속과 멸망은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한·중 관계 회복을 위한 첫 단계는 국익에 근거해 미·중의 전략적 균형자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 국력이 민주사회의 기반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장이라는 바탕 위에 만들어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싱 대사를 접견했을 때 ‘한·중 관계는 상호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서 향후 한·중 관계가 더 발전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윤 당선인과 전화통화하면서 ‘중·한 관계는 이사할 수 없는 영원한 이웃이자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념과 체제가 서로 다른 양국 간 협력의 기초는 결국 양국 경제협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외교안보 이슈가 한·중 간 경제협력을 모두 집어삼키도록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선 더욱 그렇다.
유럽이나 일본 등 기타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들은 가치외교와 실익외교를 철저히 구분해 중국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정부 부처별로 좀 더 적극적으로 중국과 소통하고, 양국 교류 확대를 위한 물밑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대통령 특사 파견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상호 오해와 냉각된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한·중 간 감정의 흉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박승찬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 박사 △전 주중 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