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일] 대통령 연설문 작성에서 유출까지 '미스테리'
2016-10-25 09:35
아주경제 주진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 44개를 파일 형태로 사전에 받아보고 뜯어고치기까지 한 정황이 JTBC보도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최씨의 최측근이자 박 대통령의 가방 제작자로 알려진 고영태씨가 "최씨가 제일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처음 나간 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었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해 "연설문 수정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은 일"이라며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고 했다. 이 실장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을 사람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말씀 자료 등을 미리 받아봤다는 JTBC 보도는 최씨의 국정개입 의혹의 구체적인 물증인 셈이어서 청와대로선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기밀문건이어서 연설 전까지 사전에 받아볼 수 있는 사람은 핵심 참모 몇몇 뿐이라는 점에서 이번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최씨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부터 실제 연설이 이뤄지기까지 뒤에서 콘트롤했다는 것인데, 청와대 내부 시스템상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이나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을 앞두고 수석실별로 자료를 올리면 관련 수석비서관 등 참모 회의를 거쳐 연설기록비서관이 초안을 만든다. 이렇게 작성된 연설문은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대통령이 최종 수정을 하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8·15경축사 등 중요한 연설의 경우 대통령이 참모진을 모아놓고 독회(讀會)를 열었으나, 박 대통령은 거의 독회를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에 따르면 그동안 비서실에서 올린 초안과 박 대통령의 수정을 거쳐 나온 최종본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박 대통령이 직접 수정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최씨가 관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JTBC는 최씨에게 전달된 문건의 작성자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라고 보도했다. 연설문 유출 시점인 2012년 12월~2014년 3월 사이 연설기록비서관은 조인근 전 비서관이었다. 대통령의 1·2부속비서관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속하는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었다.
물론 연설문 작성자와 전달자가 다른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최씨는 연설문 외에 국무회의와 청와대 비서진 교체 등 민감한 청와대 내부 문서도 발표 전에 받았다고 JTBC가 보도했다.
2013년 8월5일에 단행한 청와대 비서진 교체와 관련한 자료를 최씨는 하루 전날 이미 받아봤다.
‘국무회의 말씀’이란 제목의 문건을 보면, 마지막으로 문서를 열어본 시간은 2013년 8월4일 오후 6시27분으로 돼 있는데, 청와대는 하루 뒤인 5일 오전 허태열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서진을 대거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청와대 인사는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새 비서실장으로 등용되고, 정무수석·민정수석 등 10명의 수석비서관 중 4명이 교체된 전격 인사였다.
최씨가 받아본 청와대 관련 문서에는 대통령 주재로 장관들과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인 국무회의 자료도 다수 발견됐으며, 이들 자료 역시 회의가 열리기 전에 최씨가 전달됐다.
예컨대 2013년 7월23일 오전 10시에 열린 ‘제32회 국무회의 주재 자료’의 경우, 최씨는 회의 시작 약 2시간 전인 오전 8시12분 대통령 모두발언 문서를 받아봤다.
그렇다면 청와대 내에서 누가 최씨에게 연설문이나 국무회의 등 내부 문건 자료를 전달했는지가 의문이다.
청와대는 보도가 나간 바로 다음날인 25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모든 경위를 파악중"이라고만 밝혔을 뿐 침묵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