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루 더 그린] 앨리슨 리가 한국 대학교에 다녔다면?

2016-10-17 11:18
명문 UCLA 4학년생으로 공부·골프 병행하면서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당당한 2위…한국 대학생이었으면 우승했을지 몰라도 ‘학업은 뒷전’ 불보듯

한국계 프로골퍼 앨리슨 리. UCLA 4학년생으로 학업과 골프를 병행해야 하는 데도 미국LPGA투어 대회에서 2위를 했다.
                                                                                                                        [사진=KLPGA 제공]





16일 끝난 미국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챔피언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 못지않게 주목을 끈 선수가 있었다.

한국계 앨리슨 리(미국)다.

앨리슨 리는 첫날과 셋째날 선두였고, 최종일 시간다와 우승경쟁을 벌이다가 연장전에서 져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투어 데뷔 후 출전한 45개 대회 가운데 최고 성적인 ‘단독 2위’라는 순위보다는 그의 현재 신분 때문에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다.

앨리슨 리는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뒀다. 현재 UCLA(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 4학년으로 내년 6월 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요컨대 ‘대학생 프로골퍼’다.

우리 실정에서는 ‘대학생 프로골퍼가 뭐 대단한가. 한 둘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법하다. 전인지(하이트진로) 김효주(롯데·이상 고대), 백규정(CJ대한통운) 배선우(삼천리·이상 연대) 박성현(넵스·한국외대)도 대학생이고,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고대에 재학중이다. 그밖에도 20세 안팎의 많은 프로골퍼들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며, 자랑스럽다는듯 학교 로고까지 달고 경기에 나선다.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대학생 운동선수와 일반 대학생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 반면, 한국에서는 대학생 운동선수들에게 상당한 혜택을 준다는 점이다.

대부분 미국 대학은 운동선수라 해도 수업에 임하고 소정의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려면 학업만 하는 일반 학생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힘든 과정 때문에 타이거 우즈, 아니카 소렌스탐 등을 비롯한 많은 프로골퍼들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만 했다.

한국 대학은 유명 운동선수들이 출석해 학업을 닦는 대신 1년에 한 두 차례 학교에 가 레포트를 제출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받는 것으로 갈음한다. 그러고도 졸업장을 주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국의 큰 대회에서 대학생이 우승하거나, 유명 대회에 대학생이 출전하면 어김없이 “학업은 어떻게 하고 대회에 출전했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챔피언십 우승으로 그 이듬해(2014년)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 출전한 이창우(CJ오쇼핑·당시 한체대 재학중)에게도 그런 질문이 나왔다. 그 때 이창우는 “학교에서 편의를 봐줘서…”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앨리슨 리는 이번 대회에 책을 싸들고 왔다. 라운드 후에는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대신 숙소로 가 공부를 했다. 그는 “수업에 처지는 것같고 나에게는 학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 다 열심히,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3라운드 후 말했다. 예전 박지은(애리조나주립대 졸업)과 최근 미셸 위(스탠퍼트대 졸업)도 그랬다. 미국 대학생 운동선수들은 비슷한 패턴이다.

앨리슨 리는 이번 대회 최종일 18번홀(파5) 서드샷을 할 때까지 시간다에게 1타 앞선 선두였다. 핀이 그린 가장자리에 꽂혔으므로 중앙을 겨냥해 파만 했어도 우승컵은 그의 몫이 될 뻔했다.

앨리슨 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서커 핀’을 곧바로 겨냥했다. 볼은 의도한 바와 달리 약간 오른쪽으로 밀리며 래터럴 워터해저드에 빠져버렸다. 5온1퍼트로 보기가 되면서 연장전에 끌려갔다.

같은 홀에서 치러진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노린 칩샷(네 번째 샷)이 홀에 들어갈 뻔했다. ‘탭 인 파’로 파세이브를 잘 했으나 승리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시간다가 약 2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넣고 경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앨리슨 리가 한국의 다른 대학생 프로골퍼들처럼 학업보다 골프쪽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대회 경험 등이 많았다면, 정규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세 번째 샷을 더 ‘영악’하게 처리했을지 모른다. 물론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다.

앨리슨 리는 자신의 샷에 대한 후회 때문인지, 다잡았던 첫 승 기회를 놓친 때문인지, 연장전 후 눈물을 흘렸다.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우승 다툼을 하다가 2위를 한 것이 평생 잊히지 않을 법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진짜 대학생’ 신분으로 세계적 대회에서 연장 끝에 2위를 한 것은 대단한 결과다.

앨리슨 리는 이 대회를 끝으로 당분간 대회에 나서지 않으며 시즌 마지막 대회에만 출전할 계획이다. 곧바로 학교로 돌아가 밀린 공부를 하고, 졸업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프로골퍼의 길을 걷는다면, 다른 선수들보다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골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골프 외 다른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있으므로 골프만 해온 선수들보다 훨씬 여유있는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골프도 잘 하고, 머리도 꽉 차고…. 우리 현실에서는 부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