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대중외교, 사실아닌 진실을 보자

2016-10-16 15:29

강정숙 외교안보팀 기자[사진= 아주경제 DB]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시사는 사실을 다룰 뿐, 꼭 진실을 다룰 수는 없다". 유학시절 다큐 분석 수업 시간, 독일인 교수의 첫 강의 내용이었다.

사실을 전달하는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진실 여부를 가리거나 꼭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뉴스가 진실보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전파되어야 하는 습성탓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게임, 외교안보를 담당해 오면서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사실보다 진실에 더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다. 여기에서 진실이란 상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지난 1월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핫라인이 가동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우리 언론은 앞 다퉈 정부의 외교력을 도마위에 올려놨다.

당시 언론들은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경쟁관계를 이어가느라 대북제재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중국의 전승절 참석까지 하며 '중국 경사론'도 불사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중외교에 대한 회의론도 등장했다.

4차 핵실험이 감행됐던 당시,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에 따른 대응 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사상 최고의 밀월 관계를 뽐내고 있던 중국 중난하이(中南海)로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1월 6일 4차 핵실험 후 닷새가 지나도록 핫라인은 가동되지 않았고 그 즈음 청와대는 자존심 아닌 자존심이 상했을터다.

언론의 지적대로 성과 내기에 급급한 박근혜 정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상의 한중관계를 보여주려 했을지 모른다. 아울러 그런 기회를 놓쳐버린 우리의 대중 외교에 문제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국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중국의 외교 방식을 들여다보자.

중국은 외치(外治)보다 내치를 우선시 하는 국가다. 외교를 신경쓰기 보다는 그 사건이 가져올 국가의 전략적 입장과 대응 방침을 먼저 결정하게 된다. 내부적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시진핑 주석을 포함한 대사관의 직원까지 어떤 누구도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

국가 위에 당(黨)이 존재하는 중국은 개인에 앞서 집단이 우선시 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처럼 당국자나 대통령 개인의 의사판단으로 다른 나라와의 즉각적인 소통은 사실상 불가능 한 것이다. 당이 어떤 결정을 먼저 정해야 그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는 것이 중국이라는 나라의 진실이다.

청와대는 이런 중국의 기본적 정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우스워지는 일을 자처했고, 우리 언론들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언론은 청와대의 중국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해야 마땅했다.

청와대가 스스로 좌절하고 있을 때 즈음, 한 달 만에 중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뒤 늦은 전화라 청와대는 불쾌감을 그대로 표현했다. 하지만 중국에겐 한 달이란 시간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중국은 어느 나라와도 즉각적 ‘핫라인’을 가동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 정부의 태도를 오히려 중국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식 즉, 서구식 민주주의에 입각한 외교 스타일로 중국의 외교를 이해하고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국제적 스타일을 따르지 못하는 중국 외교는 '촌스러운' 스타일로 볼일 수 있다.

살펴야 할 많은 사실들로 인해 진실에 접근해야 할 우리의 눈이 어두워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모습의 사실이 아닌 진짜 모습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진실을 보려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