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인 6일 오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제18호 태풍 '차바'(CHABA)의 영향으로 파손된 비프빌리지를 관계자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하고 있다.[사진=연합]
(부산)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매년 이맘때면 시네필과 영화인이 모여 바다를 이뤘던 부산이 올해는 을씨년스럽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6일 막을 올렸지만, 예년의 흥겨움은 찾기 힘들다. 영화관계자들은 왕왕 “씁쓸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다이빙 벨’ 상영으로 벌어진 갈등의 골이 완연히 아물지 않은 데다, 김영란법 시행, 개막 하루 전에 불어 닥친 태풍까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의 걸림돌이 됐다.
부산시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문제 삼으며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협하자 영화인들은 영화제 보이콧으로 단체 행동에 들어갔다. 일부는 보이콧을 철회했지만,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한국프로듀서조합 등 4개 주요 영화단체는 부산시 사과 없이 진행된 영화제를 거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배우 김의성이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피켓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냉기는 개막식에서부터 느껴졌다. 참석자가 150여명으로 지난해보다 50명가량 줄었고, 그마저도 톱스타와 유명 감독은 손에 꼽는 수준이라 객석의 환호도 눈에 띄게 줄었다. 여고생 이(17세) 모양은 “한시간 반이 넘도록 진행된 레드카펫 개막식을 참아냈는데 정작 보고 싶어 하는 배우는 오지 않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감독들이 참석하지 않는데 배우 혼자 덩그러니 가기가 좀 그렇다”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는 “작품이 초청되지 않더라도 영화제를 즐기러 가는 분위기가 이번에는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고 했다.
해운대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부대 행사는 예년에 비하면 눈에 띄게 줄었는데 그마저도 태풍 차바가 할퀴고 가 모두 취소됐다.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개막식 후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기울였던 해운대 포차촌도 파도에 잠식된 듯 잠잠했다. 영화제 때면 호황을 누렸던 해운대 시장 상권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대목을 기대했던 상인은 “축소된 영화제보다는 태풍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부산에 태풍이 온 건 정작 5일 반나절뿐이었지만 언론에서 유난스럽게 보도해 관광객이 확연히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6일 낮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TV에선 여전히 차파 피해를 전했다. 부산에 모인 영화인들도 “김영란법 위반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없다”며 숙소를 지킨 탓에 분위기는 더욱 위축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워낙 조용하게 치러지는 통에 부산시민들도 관심도가 뚝 떨어졌다. 15년째 부산에서 택시를 모는 김(56) 모씨는 “10월에 해운대가 꽉 막히면 ‘아 영화제가 열리나 보다’ 했는데 올해는 워낙 한산해서 영화제가 열리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영화제 때면 몰려드는 관객과 영화인 때문에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해운대 주변 숙소에도 빈방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