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주차난] (하) "솜방망이 처벌 비웃는 관광버스...단속, 안하나 못하나"

2016-10-05 14:10
중구청 단속 동행취재...확성기 경고 안내에 꿈쩍도 안해
"관광버스 수, 기사 인식 통제 수위 넘어...정부 대책 마련 필요"

​중구청 소속 주차단속팀(2인 1조)이 4일 오후 2시께 서울 중구 장충단로 신라면세점 주변 도로에 불법 주·정차된 관광버스를 단속하고 있다. [사진=조득균 기자]


아주경제 조득균 기자=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인근 주차장으로 빨리 이동하세요"

4일 오후 2시 30분께 서울 중구 장충단로 신라면세점 주변 도로. 불법 주·정차된 관광버스 5대가 차로에 길게 늘어서 있어 도로는 마치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을 지나던 승용차와 시내버스는 한 개 차로를 차지한 관광버스행렬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곡예운전을 하듯 아찔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 장면이 단속차를 타고 일대를 지나던 중구청 소속 주차단속팀(2인 1조)의 시야에 순간 포착됐다. 단속팀은 확성기를 통해 경고 조치를 취했지만, 불법 주·정차된 관광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속팀은 관광버스 가까이에 차를 대고 왼손엔 소형 카메라와 오른손엔 태블릿PC를 들고 해당 버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단속원은 불법 주·정차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고, 또 다른 단속원은 단말기에 차량번호를 입력했다.

순간 위반장소와 일시, 내용이 적힌 가로 5cm, 세로 6cm 크기의 하얀색 스티커가 출력됐다. 단속팀은 그 즉시 '과태료부과 및 견인대상 차량'이라고 적힌 공문과 함께 버스 앞 유리에 달린 와이퍼 사이로 끼워넣었다.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됐다. 안내 방송에 미동도 보이지 않던 기사가 그제서야 나타나 거센 저항을 했다. 단속팀과 티격태격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어수선한 일전을 치르고 다음 단속 구역으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주차단속원 김씨(55)는 "우리가 단속에 나서려고 하면 언성을 높이면서 저지하는 기사들이 부지기수"라며 "이런 경우 단속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어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단속팀이 주요 면세점이 자리한 동대문~남산~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불법 주·정차된 관광버스 단속에 나섰지만  철저히 단속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데 면세점 주차장과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관할 구청과 시의 인력은 제자리 걸음이다. 

올해 9월까지의 누적 중국인 관광객 수는 622만명으로 지난해보다 33%가 늘었다. 중국인을 포함한 전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275만명에 달한다. 면세점 관광은 외국인들에게 필수코스여서 주말이면 평균 500여대의 관광버스가 면세점을 찾는 셈이다. 

하지만 단속 실적은 이에 비해 미미한 상황이다. 불법 주·정차 적발건수는 2015년 2121건, 올해의 경우 7월까지 1904건으로 집계됐다. 서울에 들어오는 관광버스가 주말만 따져도 연간 4~5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는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시내버스 운전기사 최모(47)씨는 "을지로·서대문로를 지날 때면 관광버스들로 꽉 차 양쪽 갓길은 아예 주차장"이라며 "단속이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가, 계속 이렇게 방치할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소속 주차단속 공무원은 총 220명이지만, 오전·오후조로 나누어 단속에 참여하는 실질적인 인원은 하루 50명에 불과하다. 주요 면세점이 밀집된 중구청의 주차단속인원도 36명 뿐이다. 면세점 주변의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서울시과 해당 구청은 특별 대책은 고사하고 주차단속 인원 증원 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관광버스들이 면세점 앞에 승객을 하차시킨 후 주변 일대로 빠졌다가 순서대로 돌아오는 '회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대형 면세점 여러 곳 몰려 있는 일본 도쿄의 주오구청은 관광버스의 면세점 앞 정차 시간을 1분 30초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관광버스의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해 현재 5만원에 불과한 과태료를 15만원으로 3배 인상하는 방안과 함께 과태료 재부과 시한을 현재 2시간에서 30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서울 한 면세점에서 일했던 김모씨(여·28)는 "보통 면세점 측에서 관광버스기사에게 주유권이나 다른 곳에 주차할 수 있도록 주차권을 나눠줬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면서 "일부 면세점 측에선 관광버스 유입은 수입과 직결된는 문제기 때문에 버스기사의 과태료를 대납해주는 경우가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보다 강력한 단속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올 들어 도로를 점령한 관광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과태료(5만원) 부과 횟수가 급격히 늘어났다"면서 "하지만 서울시내 면세점 주변을 돌아다니는 관광버스가 워낙 많기 때문에 모든 민원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