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고랑은 몰라 마씀 혼저 왕 봅서~

2016-09-29 00:00
말로 해서는 모릅니다 어서 와 보세요~
서늘한 바람이 감싸 안은 천혜의 섬, 제주 여행

아주경제 기수정 기자 =쉽게 물러설 것같지 않던 태양의 강렬함을 서늘한 바람이 잠재우기 시작할 즈음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 년 내내, 그 어느 곳에 있어도 좋은 곳 '제주도'라지만 더위가 한풀 꺾인 후라 더 좋았다. 청명한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머릿결을 감싸는 바람까지….마주치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제주에서 1박2일의 짧은 여정을 보냈다. 

◆장엄한 일출에 숨이 멎을 듯…성산일출봉

 

일출의 명소 성산일출봉                                                               [사진=기수정 기자]


제주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성산일출봉이었다. 

제주도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이곳을 찾았을 법한 성산일출봉은 제주 하면 떠오르는 명소이자 제주 여행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이 곳에서 맞는 일출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다른 어느 곳의 일출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이곳의 일출은 경탄스럽까지 하다.

처음에는 성산일출봉이 가장 잘 보이는 인근 해변에서 일출을 볼 요량으로 이 곳을 찾았지만 이날은 구름이 껴 일출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왕 온 이상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여행객의 모습이 아니겠는가'는 생각에 일출봉 정상으로 향했다. 

182m. 야트막한 높이지만 약 5000년전 분출된 화산, 성산일출봉의 정상은 거대했다. 눈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분화구는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그 모습 또한 빼어났다. 

성산일출봉까지 오르는 데는 50분 정도 걸린다. 길도 무난한 편이라 남녀노소 무난하게 오를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이라 조금 힘들 수 있겠지만, 전망대까지 오르면 제주의 멋진 풍광과 쪽빛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성산일출봉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여행객을 맞는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쪽 해안에 위치한 성산포 해녀물질공연장에 들러 보자. 연중 해녀 물질공연이 펼쳐진다. 근처 해녀의 집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성산일출봉 인근 해변에서는 승마체험도 할 수 있다. 떠오르는 해, 햇살의 빛깔에 물든 황금빛 바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을 앞에서 바라보며 이색적이면서도 소중한 추억쌓기를 할 수 있다.

◆파도와 바람, 초원이 조화를 이루다…섭지코지

 

산책로를 걸어 섭지코지 전망대로 향하는 관광객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사진=기수정 기자]



공항 근처에 숙소가 있음에도 성산까지 왔으니 이 곳에서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섭지코지가 제격이었다. 

파스텔 톤의 하늘,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그 옆에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 조화를 이루는 섭지코지로 향했다.

섭지코지의 ‘코지’는 바다로 돌출된 지형인 ‘곶’의 제주 방언이다. 신양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와 약 2㎞에 걸쳐 뻗은 자루 형상을 하고 있다. 

섭지코지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로 이동하려는 순간 전화통화를 하는 듯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섭지코지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잖은가. 난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와. 뭐라고? 섭지코지 입구라고? 난 자네가 보이질 않아."

격앙된 어조의 그 남성은 섭지코지 입구가 두 곳이라는 것을 모른 채 연신 화를 냈고 바로 그때 보다 못한 매점 주인이 나와 그에게 말했다.

"섭지코지는 입구가 두 곳이에요. 아마 다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렇다. 섭지코지는 입구가 두 곳이다. 신양리 해수욕장으로 돌아 들어가는 방법과 휘닉스 아일랜드 안으로 향하는 방법이 있다. 

신양리 해수욕장으로 돌아 섭지코지 입구에 들어서면 중대형 승용차 기준 2000원의 주차요금을 내야 하는 반면, 휘닉스 아일랜드에 주차를 하고 내리면 주차비 없이 무료로 섭지코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 일행은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과연 중년 남성은 일행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산책로로 향했다. 파란 하늘, 바람에 일렁이는 초원, 밀려드는 파도는 그동안 막혀 있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천연 소화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그리고 우뚝 치솟은 촛대바위 등은 제주의 전형적인 태곳적 바다 풍광을 선사한다.

탐방로 입구를 지나 쭉 걷다 보면 언덕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마주칠 수 있다. 초원에서 유유자적하는 말들의 모습이 목가적이다.

하이라이트는 섭지코지 끝 흰색 등대 위에 서서 바다의 푸른 빛과 어우러진 해안 절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넘실대는 파도 너머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운치 있는 그곳…원앙폭포

 

영롱한 물빛, 우거진 난대림이 조화를 이루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원앙폭포.
                                                                                      [사진=기수정 기자]


 

섭지코지에서 내려오니 벌써 시계는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제주의 절경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발걸음을 옮긴 곳은 돈내코 유원지의 원앙폭포.

돈내코 유원지 계곡 주변에는 야영장, 청소년 수련원 등이 있어 여름철 물놀이를 즐기기에 그만이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찾아도 손색없는 여행지다.

돈내코의 원래 지명은 '돗드르'였다고 한다. 돼지 들판이라는 제주 방언 '돗드르'는 멧돼지가 워낙 많이 출몰해 이름붙여졌다.

돗드르에는 멧돼지가 내려와 물을 먹었다던 입구가 있었는데 이를 '돗내코'라고 부르다가 지금의 '돈내코'가 됐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100m가량 길을 걸어 올라가면 몽환적 분위기의 원앙폭포까지 감상할 수 있다. 

원앙폭포는 한 쌍의 폭포가 사이좋게 흘러내려 '원앙'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다만 원앙폭포로 이어지는 길은 데크로 가파르게 연결돼 있었고 점심을 먹은 지 한참 지난 터라 오르고 내리길 몇 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동행한 지인은 “사이좋은 원앙도 헤어지겠다”며 불만 아닌 불만을 쏟아냈지만 정작 폭포의 경관을 본 순간부터는 입을 꾹 다물고 카메라 셔터만 연신 눌러 댔다. 

운치있는 수락폭포로 통하는 이 곳은 제주도에서 드물게 일 년 내내 물이 흐른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동산벌른내와 서산벌른내가 산록도로의 동쪽 끝 지점인 제7산록교 아래에서 만나 하나가 됐다. 

그동안 유명 피서지인 돈내코 원앙폭포의 낙석 발생으로 진입 산책로가 통제됐으나 지난해 7월 원앙폭포 우회 산책로가 개설되면서 통행이 재개됐다.

이 곳을 찾기 전날까지 비가 온 터라 길은 조금 젖어 있었지만 물줄기는 더 풍성했고 물빛은 투명한 사파이어 빛깔을 머금고 있었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용천수가 거침없는 물줄기를 쏟아내는 이곳은 울창한 난대 상록수림과 어울러 절경을 이뤘다.

마치 사람이 찾지 않은 원시림 속 작은 폭포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이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풍광 감상에 여념없는 모습이었다. 

여름철에도 선선해 피서지로 사랑받는 돈내코계곡 일대는 더위가 물러나기 시작한 초가을임에도 웅덩이에 몸을 담그며 짜릿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매년 음력 7월15일 백중날 제주 여인들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맞아 통증을 낫게 하는 민간요법 '물맞이'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경관에 취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 대며 즐거움을 만끽했고, 그렇게 한참을 폭포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토록 많이 제주를 갔어도 그 흔한 여행지의 참모습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지난 세월이 후회스러웠다.

제주의 흔한 여행지에서 제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던 9월의 제주 여행, 제주에서의 1박2일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성산일출봉을 앞에 두고 한가로이 노니는 말 한 쌍                                       [사진=기수정 기자]


 

구름이 끼어 뿌옇게 보이는 성산일출봉 전경과 해변에 투영된 성산일출봉 모습.                  [사진=기수정 기자]


 

섭지코지 산책로를 걷다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커플                                       [사진=기수정 기자]


 

전망대를 향해 걸어가는 여성 여행객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기수정 기자]



 

가파른 데크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내리는 원앙폭포에 다다른다. [사진=기수정 기자]


 

아부오름 초입에 있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와 그 위를 장식한 파란 하늘                             [사진=기수정 기자]


 

아부오름. 전경. 돔형 축구장처럼 보이는 바닥에 삼나무가 둥글게 심어져 있어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사진=기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