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50]6·25사변으로 원고 소실된 ‘조선무역사’

2016-07-20 09:50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50)
제3장 재계활동 - (45) 회원들의 개척정신(開拓精神)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미도파에 사무실을 가진 무역협회는 1949년 12월 1일자로 최초의 무역연감(貿易年鑑)을 펴냈다. 이어 조선무역사(朝鮮貿易史) 편찬에 들어갔다. 나익진(羅翼鎭) 전무가 주관하고 조사부장(調査部長) 고승제(高承濟)와 조사과장(調査課長) 안림(安霖)이 실무를 담당했는데, 집필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면면들이었다.

김성칠(金城七, 서울대 사학과 교수)
김상기(金尙基, 연세대 교수)
신태억(申泰億, 세관과장)
김규면(金圭冕, 무역업자)
김익균(金益均, 건설실업 사장)

원교료 만도 300여만 원이 지출되었는데 인쇄 직전에 6·25 발발로 원고는 소실되고 발간은 끝내 무산되고 만 것은 애석한 일이었다. 한편 목당(牧堂) 이활(李活)은 4월의 제4회 정기총회에서 4대 회장으로 재선되고 있는데 회장단은 다음과 같다.

회 장 이활(李活)
부회장 오정수(吳楨洙, 한국무역진흥)
김용주(金龍周, 대한해운공사)
김익균(金益均, 건설실업)

이 총회의 임원 개선 특징은 상무이사진(常務理事陣)이 많은 변모를 나타낸 점인데 그것은 그동안 업계에 수출입 실적에 따른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전무이사    나익진(羅翼鎭, 무역협회)
상무이사    김용성(金龍成, 대한물산)    이종민(李鍾敏, 화신산업)
               김인형(金仁炯, 동아상사)    서선하(徐善夏, 삼흥실업)
               설경동(薛卿東, 대한산업)    한격록(韓格綠, 동양실업)
               전택보(全澤珤, 천우사)       송대순(宋大淳, 대신상사)
               장기식(張驥植, 삼성무역)     오계선(吳桂善, 삼양사)
               안동원(安東源, 상호무역)
이      사   김의정(金義正, 고려흥업)     김병연(金秉堧, 조선산업진흥)
               황의문(黃義汶, 광덕상회)     백낙승(白樂承, 대한문화선전사)
               조인변(趙寅變, 천일무역)     이연재(李年宰, 미진상회)
               조영일(趙榮一, 대성산업)     강재영(姜在榮, 동화실업)
               신영균(申永均, 영화물산)     강익하(康益夏, 금계상공사)
               김정도(金正道, 중앙교역)     김생훈(金生薰, 남창실업)
               김정중(金正中, 상신무역)     강장열(康長烈, 동원무역)
               이상도(李相度, 계명무역)
감      사   주요한(朱耀翰, 삼흥실업)     임송본(林松本, 식산은행)

협회가 출발한 지 3년이 채 못되었지만 그간 업계는 급성장했고, 협회는 하나의 신진자본세력(新進資本勢力)의 집결체로서의 성격을 뚜렷이하기에 이르고 있었다.

한국의 근대무역사(近代貿易史)는 한국민의 뛰어난 성공사의 기록이다. 무역입국(貿易立國_을 이루기까지의 산 역사는 초기 무역 때 그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어 서로의 활약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경제건국(經濟建國)의 구심점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무역은 1952년 국제연합(UN)군 대여금(貸與金) 상환불(償還弗)에 의한 일방적인 수입 무역이 전개되기 이전까지라고 보겠는데 이 기간 무역협회를 이끈 것은 이활·나익진·김익균 팀이었다.

목당의 지도자로서의 대범성(大凡性)과 나익진·김익균의 젊음과 활동력이 개척기의 사명감을 진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업자들이 모험을 하기에 앞서 협회가 회원들의 단결된 힘을 빌어 공동 수출입 사업을 전개하고 대행 수출도 감행하여 문을 열어주면 회원 상사들이 현지로 뛰쳐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업계가 협회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공동 운명의 길을 열어 나가는 의지를 보였던 초기 무역은 이렇게 하여 성공했다.

목당·나익진 팀은 1953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있었던 제7회 정기총회에서 사임하고 일단 후퇴하지만 협회의 이사 중심 운영체제는 허물어지지 않았고 오늘도 이 정신은 이어져서 한국무역협회의 근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