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리아]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창의적인 대한민국은 어린이같은 시선에서 시작”

2016-07-21 00:06
늘 보는 풍경과 사물도 어린이가 보는 것처럼 새롭게 봐야
다양한 여행 역시 창의성의 ‘발로’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은 "익숙한 것에서 탈피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에 의구심을 가져야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말한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지하철역에 있는 노숙자를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그 노숙자가 몇 시에 그 자리에 와서 몇 시에 그 자리를 뜨는지 지켜보세요. 평소에 쉽게 지나쳤던 풍경을 호기심을 갖고 새롭게 보는 것이 새로운 창의성의 시작입니다.”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69)은 과거 교수를 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과제를 낸 적이 있다. 갇힌 교실 안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수업이 아닌 현실 속에서 무심코 봤던 광경을 새롭게 관찰하는 것이 학생들의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학찬 사장은 지난달 24일 기자와 만나 시종일관 호기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익숙해져버린 것을 탈피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동안 가졌던 직업만 스물 다섯가지…처음엔 편견의 시선도 많이 받아

고학찬 사장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 무려 25개의 직업을 가졌을 정도로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방송PD부터 방송작가, 당구장 주인, 바텐더 웨이터, 레스토랑 매니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고학찬 사장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일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넓은 시각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처음 방송PD 출신이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문화 공연계 출신이 아닌, 방송계 사람이 예술기관의 장으로 온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고학찬 사장은 “처음 부임했을 때 주변에서 말이 많았지만 딱히 대응은 안 했다. 열심히 일해서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이구나’란 말을 들으려고 더 악착같이 일했다.”고 회고했다.

역대 예술의전당 사장 중 첫 연임…획기적인 레퍼터리 공연의 영상화

고학찬 사장은 2013년 3월 14대 사장으로 부임해 올해 3월 15대 사장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이는 역대 예술의전당 사장 중 처음이다. 예술의전당 28년 역사에 14명의 사장이 거쳤으므로 사장의 평균 근속 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임기는 3년이다.

실제로 해외 예술기관장들의 경우 재임 기간을 오랫동안 보장해준다. 이는 예술기관이 복합문화공간 콘셉트를 오랫동안 정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사업 역시 무산 위기없이 추진될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

고학찬 사장은 “처음 부임하고 1년동안 업무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할 때 쯤이면 관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있게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면서 “사람이 바뀌면 전임자가 하던 것을 잘 이어가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이번 연임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예술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우수 레퍼터리 공연을 영상으로 만들어 국내외에 상영한 공연영상화사업 ‘삭 온 스크린'(SAC ON SCREEN)은 획기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공연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동안 뮤지컬 공연에서는 배우와의 공간적 거리 때문에 섬세한 표정 연기나 묘사를 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삭 온 스크린’을 통해 관람객들이 영상으로 뮤지컬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배우들의 감정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고학찬 사장은 “공연의 영상화는 무대 위에서는 불가능했던 부분을 가능하게 해준 측면이 크다”면서 “예를 들어, 공연장에서는 비싼 값을 주고 티켓을 사더라도 한 각도에서만 공연을 봐야하지만 공연을 영상으로 찍으면 천장부터 바닥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이 지난달 24일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예술의전당 문턱은 낮췄지만…낮은 자체 제작 공연 비중은 아쉬워

이처럼 고학찬 사장은 공연의 영상화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문화 공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부유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예술의전당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서예박물관의 재탄생이다. 서예박물관은 28년이란 세월동안 일반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은 채 노년층 관객만 한 번씩 방문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자연적으로 소멸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고학찬 사장은 예산 편성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예산 100억원을 지원받는 데 성공했고, 1년여에 걸친 공사를 통해 서예박물관을 재개관했다. 그 덕분에 그동안 침체됐던 서예계가 고무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고학찬 사장은 “요새 문화융성 얘기를 많이 하는데, 문화융성에는 소수 문화인이나 소수 애호가를 위한 정책보다 문화소외계층을 없애고 문화소외지역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국토와 전국민이 문화를 사랑하고 느끼고 즐기는 분위기가 돼야 문화융성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자체 제작 공연 비중이 적은 것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현재 예술의전당의 자체 제작 공연 비중은 20%대다. 나머지 80%는 대관 공연이나 전시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학찬 사장의 목표는 자체 제작 공연 비중을 30%까지 올리는 것이다.

고학찬 사장은 “현재 전당의 재정 자립도는 75%다. 전세계 어디에도 이 정도의 재정 자립도를 자랑하는 극장은 없다.”면서 “자체 제작 공연의 비중을 늘리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전속 예술 단체도 있어야 한다. 국립오페라단같은 상주 단체가 있지만 전속 단체도 필요하다”며 “상주 단체와는 당장 같이 작업한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기획 단계부터 차츰 협업하게 되면 공동기획이나 공동제작 형태의 작품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직원들과 허물없는 유대 관계…지난 30년보다 앞으로 30년 더 중요

고학찬 사장은 평소 회식 자리에서 먼저 노래를 부를 정도로 직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선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직원과도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 소통 창구를 항상 열어놓는다.

그 비결에 대해 고학찬 사장은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다. 다른 사람하고 거리를 두고 목에 힘을 주는 그런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면서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항상 똑같이 사람을 대한다. 인생의 철학이다. 내 바로 아래 본부장부터 용역회사 직원까지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분들과도 대화를 한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귀띔했다.

2018년에는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기관의 특별한 해인만큼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에도 벌써 분주하다.

고학찬 사장은 “앞으로 3년을 더 하면 30주년을 맞는다. 제일 큰 일이 전당의 지난 30년을 마무리짓는 일이다.”면서 “그동안 잘했던 일과 못 했던 일을 잘 돌아보고 정리할 건 정리할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30년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의 창의성은 어린이의 시선과 여행에서 나와

예술 작품의 창작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고민은 예술가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한다. 고학찬 사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의 시선을 갖는 것과 여행하는 것을 제안했다.

고학찬 사장은 “어린아이들의 표정이 밝은 것은 모든 게 새롭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웬만한 사물이나 현상을 처음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면서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의 눈이 아이들처럼 돼야 한다. 어떤 것을 봐도 오늘 처음 본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행 역시 고학찬 사장이 예술적 영감을 얻는 중요한 모티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살지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예술가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특히 여행을 권한다. 늘 다니는 등굣길이나 출근길을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환희이고, 경험이 된다.”면서 “나 역시 대학생 시절 혼자 여행 하는 것을 즐겼다. 내게 큰 도움이 됐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은

△1947년 8월18일생 △대광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TBC 동양방송 프로듀서 (1970.9~1977.3) △한국방송극작가협회 회원(1977.3~1980.3) △뉴욕 KABS-TV 편성제작 국장(1982.5~1994.6) △(주)제일기획 Q채널 제작1부 국장(1994.7~1997.7)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겸임교수(1994.9~2006.8)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국장(1997.4)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2000.3~2001.2) △제주영상위원회이사, 외자유치위원회 위원(2004.3~2008.3) △세명대학교 방송연예학과 겸임교수(2006.9~2008.9) △세계 제3회 델픽대회 조직위원, 이사 (2008.8) △상명대학교 방송예술대학원 영상컨텐츠전공 겸임교수(2008.9~2010.6) △윤당아트홀 관장(2009.9~2013.3)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문화예술체육분과위 간사(2010.12~2013.3) △한세대학교 방송공연예술과 겸임교수(2011.3~2012.2) △렛츠런재단 이사(2014.3~2018.3)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문화분과위원장(2014.7~2015.6)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2015.6~2017.6)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 위원(2015.7~2017.7) △제주국제대학교 실용예술학부 석좌교수(2016.5~2017.2)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회장(2013.3~현재) △예술의전당 사장(2013.3~현재)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이 지난달 24일 예술의전당 임원실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