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사드배치결정 10일, 특파원이 겪은 중국
2016-07-18 11:02
지식인사회 거부반응 심해, 관료집단 자발적 경제제재나서, 일반 인민들의 반한감정 확산 가장 심각
관료면담취소, 문화행사 취소, 관광계획 무산, 인터넷에서는 박대통령을 배신공주라 칭하며 거센 비난
관료면담취소, 문화행사 취소, 관광계획 무산, 인터넷에서는 박대통령을 배신공주라 칭하며 거센 비난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우리나라가 미국과 함께 한반도에 사드배치 결정을 발표한 것이 지난 8일이다. 이후 우리나라에는 중국이 경제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공포심으로 뒤덮였다. 지난 10일동안 중국은 공식적으로 제재에 나서지는 않았다. 중국이 정부 차원의 제재에 나섰다는 그 어떤 신호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제재움직임은 충분히 감지된다. 만약 민간차원의 제재 역시 '중국의 제재'에 포함시킨다면 중국의 제재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민간차원 제재 뒤에 ‘검은 손’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사드배치발표 이후 10일동안 기자가 현지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해본다.
◆명문대 학장 "한국여행 자제하라"
지난 15일 만났던 베이징의 한 젊은 교수는 기자에게 당일 오후에 있었던 교무회의에서 나왔던 발언들을 소개해줬다. 이 대학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문대학이다. 당시 교무회의를 주재했던 단과대학 학원장은 20여명의 교수들에게 "이번 여름방학기간동안 미국, 일본, 필리핀, 대만, 한국으로의 해외여행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학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각 국가별로 해외여행자제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국제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을 앞둔) 긴요한 시기에 중국의 등에 칼을 꽂은 국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에는 한국여행 및 한국제품구매를 자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의 감소는 우리나라 경제로서는 악몽에 가깝다. 특히 지식인들 사회에서의 반한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일반 인민들에게까지 퍼져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심각하다.
◆한국인을 피하는 중국관료들
다음날 아침 실무자간 협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지만, 중국 당국측은 "시기가 안좋으니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식의 대답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결국 출장을 온 한국 일행들은 아무런 소득없이 14일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다. 한국 손님들에게 미안했는지 중국측 실무자는 이 업체의 대관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 지도자들이 한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 승진하고 싶은 공무원들은 한국과의 협상을 잠시 후순위로 미뤄둘 수 밖에 없다"며 이해를 당부했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초청 주체인 쑹타오(宋濤) 대외연락부장(장관급)을 만나지 못했다. 14일 예정됐던 오찬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쑹 부장은 갑작스러운 개인일정을 이유로 13일 저녁 불참을 통보했다고 한다.
◆해관공무원들의 자체제재
16일 저녁에 만난 조선족 무역업체 사장은 대뜸 기자에게 "너무나도 불안한 날들이다"고 토로했다. 이 업체는 한국으로부터 소비재제품들을 대량구매해 컨테이너선으로 들여와 중국에 유통시켜왔다. 신속한 통관과 절세를 위해 그 동안 중국 해관 공무원들과의 소통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던 터다.
이 업체의 사장은 그 동안 호형호제하던 해관 공무원들과 통화를 해보니,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싸늘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하루만에 통관되던 컨테이너였지만, 사드배치 이후로는 단 하나의 컨테이너도 통관되지 못했다. 해관측으로부터는 그저 "대기하라"는 소식만을 듣고 있다고 한다.
그는 "통관이라는 게 해당 공무원의 성향에 따라 엄격하기도 하고 느슨하기도 한다"라며 "해관공무원은 자신의 재량 범위내에서 화물의 통관을 보류할 수도 있고, 화물을 전수조사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재량에 의해서 신속하게 무사통관시키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2014년 대만에서 반중시위가 극에 달했을때, 대만의 무역업체들은 엄격해진 중국해관을 맞닥뜨려야했다. 당시 대만산 바나나와 망고 등 과일들은 장시간 해관에서 대기해야 했고, 대만산 전자부품들은 전수조사를 거쳐야 했다. 사드배치로 인해 격앙된 해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재량으로 한국발 컨테이너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는게 이 인사의 예상이다.
◆박누나에서 배신공주로
지난해 9월3일 열병식때 박근혜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천안문에 오르는 '망루외교'를 펼쳤다. 당시 중국인들은 한국에 고마워했고, 박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서점마다 박근혜 대통령 관련 서적들이 좋은 위치에 진열됐으며, 한식당들은 식당 벽에 박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고 손님들을 모았다. 중국 네티즌들은 박대통령을 '퍄오제(朴姐 , 박누나라는 뜻)라는 친근감있는 호칭으로 부르며 환호했다.
하지만 최근 시나웨이보나 주요매체 댓글에서 '퍄오제'라는 호칭은 아예 사라졌다. 대신 '배신공주(背叛公主)'라는 조롱섞인 호칭이 나타났다. 네티즌들의 댓글은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같은 호칭 변화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 인민들의 인식변화는 뚜렷하다.
많은 네티즌들이 인터넷상에서 "한국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자" "한국에 가서 화장품을 사재기하지 말자" "한국에서 쓴 돈이 사드배치로 흘러들어간다" "한국은 결국 미국편이었다" "한국이 쓰디쓴 댓가를 치르도록해야 한다"는 등의 격한 댓글을 올리며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다.
◆"중국은 반드시 한국을 제재한다"
지난 12일 만났던 중국 관영언론사 고위인사는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내놨었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을 어떤 식으로는 제재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 유력지에서 30여년을 근무했던 이 고위인사는 이어 "제재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어느시점에 나올지, 드러내놓고 제재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은 반드시 한국을 제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사드문제는 일회성 이슈가 아닌 장기적인 이슈"라며 "사드배치결정을 공표하고, 입지를 발표하고, 배치일정을 만들고, 사드를 한국에 들여오고, 설치하고, 정식 운용에 들어가기까지 사드이슈는 지속적으로 한중관계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중국 언론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17일 기자를 만나 "관료사회와 지식인사회를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상황이지만, 아직까지는 반한감정이 인민들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지는 않았다"라고 현상을 진단했다. 그는 "사드문제는 남중국해 이슈에 묻힌 상태지만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수교이후 한중관계 최악의 악재"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 언론인은 "지난해 열병식을 계기로 최고조에 올랐던 한중관계가 이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국 연예인을 부르지 마라
14일 만났던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체 A사의 대외협력 총감은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업체는 여느 중국의 엔터테인먼트업체와 마찬가지로 한국 연예계와 교류가 빈번하다. 한국 가수들과의 합동공연이나 한중 합작드라마를 연출해오던 업체인 만큼 사드로 인한 한중갈등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만났던 대외협력 총감은 “최근 회사의 이사회가 회의를 개최했고 당분간 한국 연예인을 초청하거나 한국의 엔터업체와 합작추진은 보류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결정의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우리 회사의 사장이 공산당원인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하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추진중이던 사업들은 축소해야하며, 기획중이었던 올 연말 한중콘서트는 무산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사드배치로 인한 갈등이 문화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결정된 공연이나 합작이 취소됐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고 있지 않지만 기획중이던 프로젝트들은 대거 취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 기업들
중국에 진출한 우리기업들은 중국의 여론동향에 그야말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기업의 중국 주재원들은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내 정부동향과 여론추이를 거의 매일 체크해 서울본사로 보고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인들 사이에서의 반한감정이 가져올 파괴력이다.
베이징의 한 대기업의 법인장은 "중국이 직접 제재를 하지 않더라도, 반한감정이 퍼지게 되면 중국 당국의 실무자들이나 감독당국의 실무자들이 자체적으로 한국기업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며 "이보다도 중국 인민들의 반한감정, 그리고 반한감정으로 인한 한국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