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이종근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
2016-07-10 09:00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118)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 송곳이 손잡이부터 들어갈 리가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는 법이다. 작은 일부터 그리고 쉬운 일부터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지만 큰 일을 해낼 수 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송곳이 끝부터 들어가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 법이다.”
고촌(高村) 이종근 종근당 창업자는 개인이자 기업가로서 삶은 이 말과 같이 변하지 않는 순리를 따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19년 9월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난 고촌은 1934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철공소 견습공, 전기상회 쇼리(심부름하는 소년), 정미소 쌀 배달원, 매약행상 등을 거쳐 1941년 5월 23세의 나이에 종근당의 모태인 ‘궁본약방’(宮本藥房)을 설립했다.
1956년 1월에는 종근당 제약사로 사명을 바꾸며 본격적으로 의약품 개발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해외 유수의 제약사들과 제휴를 추진, 1958년 덴마크 레오와 기술제휴로 항생제를 발매해 성공을 거뒀다.
1965년 국내 최초로 국제 규모의 대단위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준공하고, 클로람페니콜과 테트라싸이클린 등의 원료를 국산화하는 개가를 올렸다. 1968년에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으부터 한국기업으로는 최초로 클로람페니콜이 공인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종근당은 항생제 해외수출에 나서 9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거두었다.
1950년대에는 국내 최초의 튜브제품인 다이아졸 연고와 강신 빈대약, 1960년대에는 산토닌·비페라 등 구충제, 비타구론 등 영양제, 헤모구론 등 빈혈 치로제가 히트를 쳤다. 어린이용 구충제 비페라카라멜은 1968년에 9만개나 팔렸으나, 과자가 귀하던 시절 과용하는 어린이가 많아 수년 뒤 정부로부터 제조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1969년 회사 이름을 종근당으로 바꾼 뒤, 1971년 안성유리공업, 1972년 국내 기업 최초의 중앙연구소, 1973년 한국 메디카공업을 잇따라 세웠다. 1983년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와 합작해 한국로슈를 설립한 고촌은 진통제 사리돈을 출시했다. 이후 사리돈은 로슈와 10년 제휴가 끝난 1993년에는 국내 기술로 만든 진통제 펜잘을 후속 제품으로 선보였다. 1986년 종근당 제품인 종합소화제 제스탄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공식 소화제로 지정됐고, 1989년에는 액체 소화제 속청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근면성실’을 강조한 고촌은 임직원들에게 “신념, 생각, 노력은 제각기 별도의 것이 아니다. 신념이 서면 생각을 깊이하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 빠져도 절름발이를 면치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종근당을 위해 흘리는 땀은 자신의 삶과 크게는 인류의 건강을 위한 요체임을 늘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는 약을 만드는데 그쳐선 안 된다. 우리가 만든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항상 우리의 약이 있게 하는 사명을 지녀야 한다”며 늘 소비자들의 편에서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