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이야기
2016-07-05 06:00
[일승 양방웅의 노자와 장자이야기]
나비에서 꿩으로
어려서 고향을 떠나
까치같이 소란을 떠는 사람 구작자(瞿鵲子)와 道를 깨달은 장오자(長梧子)라는 사람이 우화(寓話)를 나눕니다.
장오자: 그것은 황제가 들어도 어리둥절한 말이야. 그런데 어찌 공자가 그런 말을 이해하겠나? 자네도 너무 성급하네. 마치 달걀을 보고서 새벽을 알리는 수탉을 생각하며[견란이구시야(見卵以求時夜)], 화살을 보고서 맛있는 산새구이를 생각하는 것 같네[견탄이구효적(見彈而求鴞炙)].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야. 내가 자네에게 한마디 더 황당한 말을 할 터이니, 자네도 편하게 그냥 들어주게나. 어떤가?
성인은 해와 달과 더불어 빛나고, 우주를 품에 안고, 만물과 하나가 되며, 번잡한 세상일 그냥 두고 시비를 따지지 않으며, 천한 노예도 존귀한 손님으로 대한다네. 속세 사람들은 고생하며 바삐 일하고, 성인은 아둔하게 보이며, 천만 년 세월의 변화 속에 참여하고, 오직 만물과 하나가 된다네. 삶에 애착을 가지는 것이 바보짓이 아닐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려서 고향을 떠나, 돌아갈 줄 모름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처럼 죽은 사람들도, 살아있을 때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꿈에 잔치를 벌여 술을 마시며 즐거웠던 사람은 깨어나 슬픈 현실을 보고 울고, 꿈에 괴로워 울던 사람은 깨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을 나가지요.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도 모르고, 꿈속에서도 꾸는 꿈이 좋은 꿈인지 아닌지, 해몽까지 하는데, 깨어나서야 비로소 꿈이란 걸 알게 되지. 더 나가 크게 깨어나면, 삶이란 것도 한 바탕의 큰 꿈, 일장대몽(一場大夢)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네.
그런데 우매한 사람은 자기만이 깨어있는 줄 알지. 군주나 지방 목사(牧使)들은 통치자랍시고 거만을 떨며 뭐라고 아는 체하니 말일세. 그들의 고루함이여! 지금 자네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지. 내가 자네에게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일 것이야.
이런 말이 매우 괴이하게 들리겠지만, 만 년 후에라도 이런 도리를 아는 큰 성인을 만나게 되면, 그 긴 시간도 아침저녁 하루에 불과한 것처럼 짧게 여겨질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