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밀은 없다' 이경미 감독 "이상하지만 결국 이해할 수 있기를"
2016-06-29 15:33
6월 23일 개봉한 영화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제작 영화사 거미 필름트레인·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장르를 굳이 정한다면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딸의 실종으로 인해 드러나는 유력 정치인 종찬(김주혁 분)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 분)의 관계, 그리고 치열한 공방전을 본다면 미스터리·정치 스릴러라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허나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를 단순히 한 장르로 정의하기엔 멋쩍은 구석이 많다. 굵직한 스토리나 거침없는 전개, 감각적인 인물들과 독특한 시점들은 그리 보편적이지 않으니까.
그렇다. 데뷔작 ‘미쓰 홍당무’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비밀은 없다’는 보편적이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그의 작품은 어김없이 광적이고 예민하며, 섬세하다. 그리고 그 독특한 질감과 화법은 어김없이 반갑고 또 즐겁기만 하다.
-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8년이나 흘렀나 싶기도 하다. 실은 그 8년이라는 시간동안 매우 바빴었다.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 각색으로 참여도 하고 제 작품의 마감을 맞추고 회의도 해야했으니까.
전작 ‘미쓰 홍당무’가 그렇듯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들이 눈에 띈다. 특히 인상 깊은 건 여성 캐릭터들이다
- 여자건 남자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동경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들게 된다. 그래야 애정이 생기니까. 제가 좋아하는 연홍의 성질은 어떤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경을 넘어서는 모습이다. 질주하는 것과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지 않는 것. 그리고 극복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저는 여자들뿐만아니라 종찬의 캐릭터도 좋아한다. ‘미쓰 홍당무’를 만들 때 성은교(방은진 분)가 제 이상형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 좋았다. 이번 작품에는 종찬이 그런 모습이다. 이성적이고 야망을 가지고 있으나 그게 좌절되었을 때 변명하지 않는 캐릭터인 것이다. 정정당당하고 엄격한 부분도 그렇고, 제가 되고 싶은 캐릭터기도 하다.
- 미친X 시리즈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다. 만들고 나니까 내가 이런 여성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했던 거다. 하하하. 강한 집착이나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약간 모자란 여자를 좋아한다. 그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다.
손예진을 두고 연홍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하다. 이게 바로 감독의 눈일까 싶다
- 감독이라면 다 같은 마음일 거다. 자기랑 작업하는 배우가 나의 작품에서 빛났으면 좋겠다 하는 것. 다른 새로운 점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다. 배우뿐만 아니라 관습적인 것, 어떤 룰 같은 걸 깨보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8년 간 자기검열을 철저히 해왔던 것도 있다. 이렇게 하면 투자가 안 되지 않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자기 검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걸 깨고 싶다는 욕망도 커졌던 것 같다.
가장 강력한 관습, 가장 두터운 룰을 깨버렸다고 생각한 게 있다면?
- 사실 영화적인 부분으로 편집·사운드 활동 같은 건 아주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 르네상스시기에 더 아방가르드하고 전복적인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다시 시도해본 것이고…. 위험하긴 하지만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 건 확실하다
- 재밌는 건 오히려 어르신들은 그런 교차편집 등을 수월하게 넘어가시는데 젊은 관객들이 의외로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편집이나 화법에 있어서 독특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어떤 부분은 일본영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분명 요즘 한국영화가 말하는 방식은 아니었으니.
- 그런 이야길 많이 듣는다. ‘미쓰 홍당무’ 때도 그랬다. 하지만 정작 저는 현대의 일본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하하하. 오히려 일본의 고전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소설가 김사과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방식이나 이미지 같은 것들이 많이 떠올랐다.
- 아! 작년 쯤 누군가의 추천으로 김사과의 ‘미나’를 읽었다. 정말 좋았다. 소설이 분절되어 있는데 의식의 흐름을 따라 스토리를 따라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인물들이 광적이고 편집증 환자 같은데 그 과정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열광했었다. 영화 작업이 끝날 때 쯤, ‘미나’와 이자혜 씨의 ‘미지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그 무렵 열광했던 작품들이다.
이런 소설이나 만화, 음악들이 감독님의 영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 모르겠다. 사실 ‘미나’나 ‘미지의 세계’를 작품 완성 후에 본 것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비밀은 없다’를 쓸 당시에는 정통 스릴러나 공포 작품을 많이 봤다. 기리오 나쓰오 같은 추리소설을 좋아했었다. 대중이 없다. 당시에는 그런 클래식한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감독님의 작품에서 캐릭터들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물을 만들어갈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무엇인가
- 이상하지만 결국 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가장 어려운 건 이상하지만 말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인물에게서 멀어질 순 잇지만 결국은 인물에게 어떤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걸 위해 인물을 완성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내 기준에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타자에게는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나
- 제가 정말 괴로워하는 말이다. 항상 그 말과 싸우는 기분으로 쓴다. VIP 시사회가 끝나고 제가 들었던 말 중 가장 기뻤던 말은 ‘실제 있었던 일이냐?’는 것이었다. 극한의 감정 속 극한 상황들이 이어져 감정이 업 되어 있으니 과장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인물의 입장에서는 결코 과장된 감정이 아니었다.
‘미쓰 홍당무’도 그렇고 이번 ‘비밀은 없다’ 역시 여성들의 연대가 돋보인다. 그리고 일련의 멜로로 느껴지기도 한다
- 저 역시 이 영화를 멜로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진심을 알기 위해, 얼마나 긴 여정을 거쳐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진심을 이리도 얻기 힘들고 소중히 지켜야 한다고 느꼈다. 이건 분명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저는 이성·동성 간의 사랑의 개념을 나누지 않는다. 그를 아끼는 마음, 상대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 사랑이라고 여긴다.
관객들이 ‘비밀은 없다’를 통해 얻어갔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 일단 영화를 흥미롭게 봐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흥미롭게 지켜보시다가 끝나고 난 뒤, 자고 난 다음에 일어나서도 생각났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도 ‘비밀은 없다’를 얘기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영화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