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소설가 한강 "원작에 충실한 번역은 감정과 톤 잘 전달하는 것"
2016-05-24 14:01
24일 귀국 후 첫 기자회견 열고 수상 소감 밝혀…신작 소설 '흰'도 발표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언어의 섬세함과 예민함에 매료되는 사람으로서, 번역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인 것 같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원작에 충실한 번역은 감정과 톤을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6)은 2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귀국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며 25일 출간되는 신작 소설 '흰'을 발표했다.
택시를 타고 행사장에 오다 차가 막혀 도중에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한씨는 "큰상을 받았다고 해서 주변을 의식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입을 뗐다. 그는 맨부커상 수상을 "참 이상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상을 안긴 '채식주의자'(창비)를 쓴 지 11년, 책이 세상에 나온 지도 9년이 흘렀는데 지금에 와서 그 먼 곳(영국)에서 상을 받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소년이 온다'(창비) 등 그의 작품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그는 "특히 채식주의자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시대를 견딜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소설이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작품이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한강은 한 소설의 끝이 다른 소설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글을 써오고 있다. 앰뷸런스 차창 밖을 항의하듯 응시하는 인혜의 시선으로 마무리되는 채식주의자가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의 시작 지점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어떤 점을 바라봐야 하는가' 등을 질문(고민)해 왔고, 그 답을 얻는 것이 나의 영원한 숙제라고 여긴다"고 밝혔다.
한씨는 "1940년대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됐던 곳, 바르샤바에 머물며 여기에 살았던 '어떤 사람'을 상상했고, 내가 그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다"며 "결국 그것은 '흰 것', 즉 눈부심, 밝음, 빛 등이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글을 쓰며 책의 형태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다"며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고 발언을 마쳤다.
한편 한씨는 오는 6월 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성북동 스페이스오뉴월에서 차미혜 작가와 함께 '소실점'(Vanishing. Point)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펼친다. 그는 이 전시에서 '흰'을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