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혜훈, 경제든 정치든 “진영논리 극복이 살길”
2016-05-23 03:33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그야말로 ‘생환(生還)’이다. 19대 총선 공천에서 이른바 ‘강남에 여당 3선은 안 된다’는 불문율에 따라 공천장이 날아갔다. 20대 총선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냈지만, 이번엔 이른바 ‘진박(진실한 박근혜)’ 암초에 부딪혔다. 지역민들도 ‘서초갑엔 경선 없다던데?’ ‘청와대 사람 되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뱉었다. 6개월 넘게 ‘면대면(面對面)’ 전략을 구사하며 “그렇지 않다”고 그들을 설득했다. 결국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경선에서 꺾고 ‘강남 3선’ 금배지를 온전히 자력으로 따냈다. 이혜훈 새누리당 당선인(서초갑)의 천신만고 20대 국회 입성기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은 당당히 당선됐지만, 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했기에 속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당내 손꼽히는 ‘경제통’답게 20대 총선 실패의 원인을 공천문제 보다 ‘경제 문제’를 꼽았다.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을 심판한 것입니다. 내세운 경제정책이 하나는 돈 풀기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띄우기였는데 모두 ‘초이노믹스(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의 결과였죠. 그런데 이들 정책의 경제 활성화 효과 미비했던 반면 부작용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말았죠.”
회초리를 세게 맞았으니 이제 정신 차릴 때다. 이 당선인은 현 정부 경제정책 심판론을 극복할 카드는 “구조조정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두 야당이 구조조정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인 것을 두고 “호기”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이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식의 구조조정은 절대 금기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을 할 때 정치권이 누구에게 ‘(자금을) 줘라 마라’ 이런 개입을 하기 시작하면 절대 안되겠죠. 정치권이 이권에 개입한다든지, 민간영역에 끼어드는 것은 과욕이에요.”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재원 투입하는 구조조정, 국민세금으로 언제까지 자생력 없는 기업을 연명하게 할 지 등은 국민의 입장을 대신해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금 확충 전에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이 대우조선해양의 부채 7300%를 그대로 두고 성과급 잔치를 한 것에 대해 국회가 혼낼 것은 혼내야 하겠죠. 이런 식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을 국민들이 당연히 동의할 수 없을 거예요.”
구조조정에 필연적인 숙제인 ‘실업 대책’ 또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당선인은 “국민들이 ‘자생력 없는 기업을 왜 우리가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나’는 의문을 품게 되면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실업대책도 문제가 커지겠죠. 구조조정의 규모, 대상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실업대책도 쉽게 (공감대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이라고 칭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20대 국회에선 완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똑같은 경제민주화를 놓고 사실 새누리당과 야당이 구체적인 방안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죠. 다만 큰 틀에서 말씀드린 시대정신이랄까, 취지에서는 공통분모가 많죠. 그런데 국민들의 기대만큼 추진이 안됐어요. 이제 그 미완의 것들을 20대 국회에서 넘겨받아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야당도 분명 우리와 결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뜻은 공감하는 것이 있어서 19대 국회보다 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할 1호 법안 또한 기업총수의 정치적 사면을 엄격히 제한해, 경제민주화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8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으로, 이른바 ‘휠체어 금지법’을 내세운 것에 대해 그는 “경제 법치를 가장 안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재벌총수였다”면서 “그동안 숱하게 법안을 만들었는데, 경제 법치나 질서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국회에서 백날 법을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경제혁신 못지않게 정치혁신에 대해서도 당당히 소신을 밝혀왔다. 그런 차에 최근 정진석 원내대표에 의해 당 비상대책위원으로도 선임됐다. 당의 쇄신을 위해 한 몸 희생하겠다는 의지도 상당했을 터. 그러나 여전히 당내 다수파인 친박(친박근혜)계에 의해 전국위가 무산, 비대위가 닻조차 올리지 못하는 사태를 겪게 됐다.
이 당선인은 “한마디로 답답할 노릇”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계파를 뛰어넘지 못하면 재활이 불가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의 20대 총선에서 보여준 것은 계파 정치를 청산하라는 요구였는데, 총선이후 한 달이 넘도록 새누리당은 도로 계파 정치에 갇혀 있으니 ‘정권 재창출’마저 요원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조기 전대(전당대회)론’에 대해서도 “차라리 조기 전대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기 전대조차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비대위를 꾸리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제대로 혁신”하려면 새로운 당 지도부를 빨리 꾸려서 국민이 워하는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경제든 정치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다”고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언급했다.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야당과 협치를 하고 싶어도 이 진영정치에 갇혀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란 생각이다.
이미 17, 18대 국회를 거치면서 진영정치의 한계를 체감한 그는 의원 한명 한명이 입법기관인 만큼 그들 한 명 한 명의 의견이 존중되려면 소위 ‘당론’으로 묶어두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여야 협상을 하다보면 쟁점 사안 10개 중 5개는 못 받아들여도, 한두 개는 여야가 공감할 수 있거든요. 야당 주장에 한두 개 받을 것 받아서 수정안을 통과시키고 그렇게 해야 조금씩 입법이 이뤄지고 국회도 발전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아예 하나도 못 받아들이고 무조건 “야당 안은 못 받는다”면서 막는 것이 진영 논리에요. 정말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병폐죠”
특히 여야 협상에서 내가 100% 옳고, 상대방이 100%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에서 협치를 하려면, 진영정치의 병폐부터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20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진영정치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것이 20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내린 명령에 응답하는 길이고, 국회 또한 발전하는 길이란 생각에서다.
■ 이혜훈 새누리당 당선인 프로필
△경남 마산(1964년) 출생 △경남 마산여중·제일여고·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미국 UCLA 대학교 경제학 박사 △제 17대·18대 국회의원(서울 서초갑)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박근혜 대통령 경선 후보 대변인 △미국 랜드(RAND) 연구소 연구위원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현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대 국회의원 당선(서울 서초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