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하늘 맞닿은 아프리카 땅끝 여행
2016-05-19 00:05
문명과 야생의 공존 '반전매력'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수정 기자 =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국가. 세계 각지 테러 가능성 높아 신변안전 유의. 다중 밀집장소 방문 자제 요망. 공항미행 강도. 국내선 화물 체크인 시 래핑 철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다다랐을 때 쉴 새 없이 밀려들기 시작한 외교부의 문자 내용과 출발 전 지인의 "조심하라."는 걱정어린 당부는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과연 이번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행여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에 공항에서 좀처럼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 속 유럽'이라는 별칭이 있는 케이프타운과 '때 묻지 않은 진정한 야생' 말라말라(크루거국립공원)를 여행하면서 남아공의 매력에 흠뻑 젖어든 덕이리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분명,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 대서양과 인도양을 품은 빼어난 자연환경과 뚜렷한 기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반전의 매력이 있는, 사랑스러운' 나라였다.
지중해성 기후 덕에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명성이 높은 이곳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바로 케이프타운의 명소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이다.
제주도와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 이곳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서둘러 테이블 마운틴으로 향했다.
산 정상 부분이 마치 칼로 절단한 것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곳은 케이프타운의 상징이다. 비비, 케이프망구스, 사향고양이, 스팅복 등이 서식하며 실버트리를 비롯한 각종 야생식물이 사는 테이블 마운틴은 산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동행한 가이드 피터 홍(한국 이름 홍성일)은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성인 기준 240란드, 한화 약 1만8000원) 앞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멀미하실지도 몰라요."라고 귀띔했다.
산이 높아서 어지럽단 얘길까? 하는 마음으로 케이블카에 올라 문이 닫히고 조금 지나니 어? 정말 이상하다. 케이블카가 360도를 회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놀이기구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하지는 않아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았지만 난생처음 타보는 기이한 케이블카 덕에 테이블 마운틴까지 오르는 시간이 즐거웠다.
케이프타운 시내부터 테이블 마운틴 주변 경관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케이블카를 즐겨 타지만 이 역시 운이 좋아야 한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케이블카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 간 급경사를 오르니 마침내 테이블 마운틴의 광활한 정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미 이곳에는 많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거나 테이블 마운틴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즐기며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다.
발아래 펼쳐지는 숨 막히는 절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내고 있을 즈음 구름이 테이블 마운틴을 덮기 시작했다. 운해로 뒤덮이니 더욱 신비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피터는 "이곳에 하얀 구름이 내려앉으면 마치 테이블보가 덮인 것처럼 보여 이곳에서 신이 만찬을 즐긴다고 얘기한다."는 말로 테이블 마운틴의 수려한 경관을 비유하기도 했다.
풍광을 즐기다 보니 벌써 오후 5시 30분이 됐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아쉬움을 안고 내려오니 해는 벌써 저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야생이다!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펼쳐진 역동적인 나날
케이프타운 일정이 끝났다. 짐을 챙겨 다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반 걸려 스쿠쿠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Airport)이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마치 호텔 로비 같은 아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짐을 찾고 나니 건장한 남성 두 명의 환영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의 모든 생활을 책임질 레인저(ranger)다. 특수 훈련을 받은 정규군의 유격대원이란 뜻이지만 이곳 역시 위험천만한 야생동물들과 대적해야 하니 레인저란 이름이 묘하게 걸맞다.
아프리카 사파리 하면 자연스레 세렝게티나 킬리만자로를 떠올릴 테지만 크루거 국립공원 역시 19세기부터 운영돼 온 대자연 속 '리얼 사파리'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야생동물의 절반을 이곳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멋진 두 남성의 손에 이끌려 40여분 간 오프로드(포장된 도로 이외의 장소를 차량으로 통행하는 것을 뜻함)를 달리니 며칠간 지낼 숙소가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생활이 이뤄질 곳은 크루거 국립공원 옆 '말라말라'라는 곳이다. 경계가 없어 국립공원 내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이곳을 드나들 수 있어 통상 '크루거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이곳 말라말라에서의 야생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선 1인당 약 100만원 가량의 적잖은 비용을 내야 하지만 그만큼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숙식,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 진행되는 게임 드라이브(사파리 투어의 개념), 사파리 내를 레인저와 직접 걷는 워킹 사파리,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와인 테이블 등이 두루 포함됐다.
머무는 동안 일거수일투족(경계가 없어 야생동물이 숙소 앞까지 올 수 있기 때문에 이동 시에는 항상 레인저와 동행해야 한다.)을 책임져 주는 레인저의 버틀러 비용 역시 포함된 내용이다.
이곳에 머무는 2박 3일동안 총 네 번의 숨 막히는 게임 드라이브, 그리고 워킹 사파리를 즐길 수 있었다.
짐을 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와 기다리니 레인저가 와서 게임 드라이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사파리를 즐기는 법과 주의사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후 "이곳에는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지만 그중에서도 빅5 동물을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라고 얘기한다.
레인저와 함께 오프로드를 신나게 달리며 이 다섯 마리의 동물을 모두 찾아내면 숙소를 떠나기 전 수료증도 준단다.
학위를 따는 것도 아닌데 '수료증' 한 마디에 모두 빅5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한 마리 한 마리 찾아낼 때마다 기쁨의 환호를 점잖게 내뱉는다.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차에서 일어나는 행위 등은 동물들의 화를 돋울 수 있다. 자칫 공격을 당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단다.
빅5 동물은 사자와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 레오파드다. 동물마다 점수도 있다. 찾기 쉬운 동물(예를 들어 임팔라)부터 가장 찾기 힘들다는 치타까지 1점부터 200점까지 다양하다. 동물을 찾을 때마다 점수를 합산해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신나는 경쟁을 하기도 한다.
위험천만하면서도 스릴 넘치는 빅5 찾기가 끝이 나니 어느새 저녁 무렵이다.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해 테이블을 펼쳤다. 떨어지는 붉은 태양을 마주하며 와인과 간단한 핑거푸드까지 즐기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던 말라말라에서의 생활, 박진감 넘쳤던 이곳에서의 며칠은 이제 마음 속 깊은 곳에 가장 인상적인 여행의 추억으로 남으리라.
*취재 협조-남아프리카공화국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