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 가이드라인 시행 100일 … 주택거래량 줄고, 2금융권 대출 늘고

2016-05-12 07:55

대출받을 때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와 은행권의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다.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리도록 원금을 나눠갚아 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취지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지난 2월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행된 후 가계대출 증가세는 정부의 의도대로 완만하게 꺾였다. 새로 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깐깐해진 은행 심사를 피해 제2금융권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고,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커짐에 따라 주택거래량도 급감하는 등 부작용도 이어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이 돈을 빌려줄 때 차주(대출자)의 소득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가계부채의 급증세도 꺾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을 포함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9조7000억원으로 작년 동기(11조6000억원)보다 1조9000억원 줄었다.

특히 대형은행들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모기지론을 제외한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 등 6대 은행의 1분기 주택담보대출은 작년 연말보다 4조3396억원 늘어났다.

이는 작년 1분기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순증액인 7조6960억원의 56.4%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제1금융권의 대출 증가세는 둔화되는 추세지만 2금융권에 대한 대출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우체국예금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252조8561억원으로, 두 달 전인 작년 말(248조6323억원)보다 4조2238억원 늘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다.

보통 1∼2월은 주택거래가 줄고 직장인들의 연말 상여금으로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대출 비수기로 꼽힌다. 그동안 가계대출 잔액은 보통 감소하거나 소폭으로 증가해왔다는 점에서 올해 급증 현상은 이례적이다.

문제는 2금융권의 대출 금리는 보통 은행권보다 높아서 가계의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계가 2금융권에서 생활비를 확보하려고 대출받는 경우가 많아 전체 대출규모는 줄이지 못한 채 국민들의 이자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저금리에 목돈을 빌려 집을 산 차주들도 된서리를 맞은 분위기다. 전세난에 내몰리던 사람들이 당분간 이자만 내는 것을 생각해 대출을 받았다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매달 돌아오는 '대출 갚기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5년 거치 후 25년간 비거치식으로 분할상환하는 대출을 받은 차주가 거치기간이 만료된 후 원금 상환이 부담돼 '갈아타기'를 하려고 할 경우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적용을 받아 원금에 이자까지를 꼬박꼬박 상환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집을 팔려고 해도 주택 경기가 위축돼 거래가 줄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의 주택거래량은 19만9483건으로 작년보다 26.1% 줄었다.

최근 5년(2011∼2015년) 평균인 20만7000여건과 비교해서도 3.5% 감소한 것이다.

반면 전세난 때문에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조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2014년 3월 1억7596만원에서 올 3월 2억2647만원으로 28.7%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