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바보야 문제는…] ④레토릭에 그치는 제도개편의 숨은 그림

2016-04-27 18:00

지도로 본 20대 총선 지형 [그래픽=김효곤 임이슬 기자]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끝났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87년 체제의 균열이다. 4·13 총선을 통해 87년 체제의 부정적 유산인 1노3김(一盧三金)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겼다. 대구·경북(TK)의 새누리당·호남의 더불어민주당·캐스팅보트(casting vote) 충청이 군웅 할거한 지역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2018년 체제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돌풍의 주역인 ‘샌더스 열풍’에서 보듯, 구체제에 반기를 든 분노한 중도 무당파의 실체가 2018년 체제 안착의 시발점이다. 이에 본지는 각 당에 뿌리내린 87년 체제의 뿌리(1인 보스주의)를 도려내고 97년 체제(신자유주의)를 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정치적 레토릭(rhetoric·수사학)은 ‘모르핀’(morphine·마약류 진통제) 효과를 노린 방어기제다. 선제적인 레토릭은 구도 전선을 짤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지만, 정치 후진성의 상징인 자기 배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정치가 ‘87년 체제’의 한계인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신자유주의 만능론인 ‘97년 체제’에 머무른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특히 제도개편을 둘러싼 정치적 레토릭의 부작용은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가속한다. 차기 대선후보 등 특정 소수의 인물이 정치적 레토릭을 전면에 내세운 결과, 전형적인 ‘인물 중심’의 정치가 고착된다. 제도 개편안에 숨어 있는 그림자 자체가 한국 정치의 ‘비구조화’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 정당정치가 아닌 특정 인사 주도의 말뿐인 정계개편은 그 자체로 구체제라는 얘기다.

◆결선투표제, 4년째 공회전…개헌사안 ‘침묵’

27일 여야에 따르면 4·13 총선 이후 정치권 내부에서 제기된 제도개편 중 대표적인 것은 대통령 결선투표제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은 국민의당으로선 결선투표제(선거에서 1위 후보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1·2위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2017년 대선에서 야권연대 없이 독자적 후보를 낼 수 있다. 선거 전 인위적 단일화 등 정치 공학적 연대를 막는 방안인 셈이다.

결선투표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안 대표의 후보직 사퇴 직후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앞서 19대 국회 들어 노회찬 정의당 당선인(당시 정의당 현역 의원)은 2012년 7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문제는 제도개편이 불리한 쪽은 결선투표제의 단점(선거비용 증가)만을 제기하고, 유리한 쪽은 제도개편의 화약고(개헌 사안)를 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론화를 통한 정치개혁 논의보다는 ‘당리당략’에 매몰된 습성 탓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선거비용 증가로 결선투표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야권연대의 희생양인 소수정당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국회 본청.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끝났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87년 체제의 균열이다. 4·13 총선을 통해 87년 체제의 부정적 유산인 1노3김(一盧三金)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겼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法전문가 다수 ‘개헌사안’…제도개편安 줄 대기

하지만 이를 찬성하는 쪽도 결선투표제 도입에 필요한 개헌 여부에 대해선 공론화를 하지 않는다. 개헌 공론화 제기 자체만으로 정치권의 메가톤급 변수로 격상, 정국이 개헌발(發) 태풍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 결선투표제에 관한 명문 규정은 없다.

본지가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법무법인 이도)를 비롯해 손수호 변호사(법무법인 현재), 이재교 세종대 교수(서울국제법무법인 변호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나다 순) 등 헌법 전문가 4명에게 문의한 결과, 이 중 3명(박찬종·손수호·이재교)은 “결선투표제는 헌법 개정 사안”이라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한 결선투표제 도입의 위헌 근거는 헌법 제67조2항이다. 동법은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 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이 복수의 최다 투표자에 대한 2차 투표를 규정한 만큼, 사실상 ‘결선투표제 불가론’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변호사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한 교수는 “상대 다수대표제의 판단 시기, 즉 단 한 번의 투표로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두 번 이상의 투표로 가릴 것인지는 입법자의 재량”이라며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는 공직선거법의 문제이지, 헌법 개정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결선투표제를 주장하는 측이 ‘원 포인트’ 개헌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개혁의 일환인 제도개편안을 당리당략에 얽혀 치킨 게임만 일삼는 까닭에 각 당의 정치개혁안은 공회전 중이다.

새누리당은 △교육감 직선제 개혁 △국회 선진화법 개정, 더민주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및 석패율 △완전선거공영제, 국민의당은 △국회 대상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등을 각각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실현 시기는 ‘하 세월’이다. 정치권이 이 같은 구체제를 끊지 못한다면, 정당정치의 정체성과 영속성은 더욱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오른쪽)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