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어화’ 천우희에 대한 환상과 편견

2016-04-08 10:43

영화 '해어화'에서 서연희 역을 열연한 배우 천우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배우 천우희(29)에 대한 불유쾌한 이미지들. 그 불편한 소녀를 바라봄으로써 사람들은 측은하거나 미안해지는 일종의 죄책감을 얻곤 했다. 줄곧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거나 상처받는 여자로 등장했던 천우희는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갈수록 확고한, 단단한 어떤 이미지를 만들곤 했다. 환상 또는 편견에 둘러싸인 천우희의 이면. ‘생각과는 다른’ 천우희의 속내를 발견하게 됐다.

4월 13일 개봉하는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제작 더 램프㈜·제공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는 1943년 비운의 시대,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다. 이번 작품에서 천우희는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 연희로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연희는 기존 천우희의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극적 사연의 주인공이지만 그 과정과 방향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행로를 보여준다. 기존 천우희의 캐릭터와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연희의 ‘선택’ 때문이다. 소율(한효주 분)의 둘도 없는 단짝이자 천재적인 대중가수의 기질을 타고난 연희는 소율의 남자친구인 윤우(유연석 분)의 뮤즈가 되어 종국에는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연희의 선택으로 소율은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결국 세 사람은 파국을 맞게 된다.

영화 '해어화'에서 서연희 역을 열연한 배우 천우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동안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비중을 떠나 이야기에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들었어요. 물론 연희도 그랬지만 제가 이해시킬 수 있는 부분이 적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연희의 감정선은 기승전결이 아닌 ‘결’만 보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부단히 애썼어요.”

쉽게 말해 연희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나쁜 여자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우희는 그 부분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보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연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 혼란스러움은 연희의 심정이기도 할 거예요. 누군가는 악녀라고 하는데 저는 악녀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하하. ‘써니’의 상미도 마찬가지고요. 결과적으로 연희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악역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천우희에게 연희는 혼란스럽고 괴로운 인물이었다. 연희의 선택과 심리를 떠나 배우로서도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을 때 만난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농담처럼 “이렇게 힘든 역할은 처음”이라고 흐리게 말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만감이 교차했어요. 연기를 할 때 충분한 감정이입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동일시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시사회에서 연희를 보는데 왜 이렇게 짠하던지. 배우로서의 제 모습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한 번에 와 닿는 느낌이었어요. ‘써니’, ‘한공주’, ‘우아한 거짓말’과는 다른 느낌이었죠.”

영화 '해어화'에서 서연희 역을 열연한 배우 천우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제35회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사람들은 “더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수상은 천우희에게 더 많은 혼란을 줬다. “상을 받고 1년 동안은 불쑥불쑥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나 방향에 혼돈을 겪기도 했다.

“저는 정직하게 묵묵히 할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외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많은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아, 내가 바라는 게 너무 이상적이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많이 위축됐던 시기기도 해요.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됐죠. 보통 다들 연말이 되면 자신의 1년을 돌아보잖아요. 지난 연말에 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외부적인 것 때문에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예전처럼 돌아가자! 다 털어버리자!’하고요.”

“내 것을 유지하고 잃지 않고 싶은” 천우희는 가장 기본적인, 가장 처음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해어화’를 통해 혼란을 겪고 정화작용을 겪었으니 “앞으로 만나는 작품은 더 새롭게 더 처음처럼 시작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영화 '해어화'에서 서연희 역을 열연한 배우 천우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제 밝은 캐릭터도 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흥 부자’거든요. 하하하. 그런데 워낙 어둡고 딥(Deep)한 캐릭터를 많이 하다 보니까 밝은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도 있어요. 그렇다고 ‘다음 작품에서는 꼭 변신해야지!’하는 건 아니에요. 변신을 위한 변신을 원하지는 않아요. 천천히 쌓다 보면 저만의 영역이 생기고 필모그래피가 쌓이면서 스펙트럼이 생길 것 같아요.”

천우희만의 영역.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천천히 정확히 걷고 있다. 일관된 색깔, 방향, 점성을 가진 인물들은 더욱 확고한 천우희의 공간을 다지고 있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연기를 해야야지’, ‘포텐을 터트려야지’하고 연기를 하는 건 아녜요. 제가 추구하는 건 그 인물로서 잘살아있었나 하는 점이죠. 그런 점 때문에 ‘해어화’는 아쉬운 점도 많아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도전과 시도로 남게 될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른다든지 외적인 것들도 모두 시작점이라 생각하거든요. 천우희에게도 저런 면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영화 '해어화'에서 서연희 역을 열연한 배우 천우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