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김수근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2016-02-16 13:40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3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서민들의 아랫목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건 연탄이었다. 그전에 쓸 수 있었던 연료라곤 산에서 베어 온 장작이 전부였다. 한평생 국가 에너지원 개발에 힘썼던 해강(海崗)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자는 ‘서민 연료’인 연탄을 보급하며 춥고 서럽던 시절에 온기를 보탠 기업인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 가장으로서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해강은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일했던 연탄회사에서 사업의 단초를 구상했다. 당시 땔깜으로 쓰고자 마구잡이 벌목이 이뤄지곤 했는데, 그는 이대로 둔다면 우리 산림이 황폐화될 것이 분명하기에 우선 연탄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잘사는 나라는 산림이 푸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인 1947년, 해강은 민족자본으로 국내 최초의 연탄 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대구에 설립, 연탄의 대량생산 및 보급에 앞장섰다.
1959년에는 왕심리 연탄공장을 인수해 대성연탄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서울 진출에 나섰다. 이후 연탄을 떼는 집이라면 ‘대성연탄’을 모르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60년에는 문경탄광을 인수해 본격적인 탄광개발에 착수했다. 연탄과 석탄뿐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 석유류 판매업도 시작하며 일반 가정 및 산업계에 공급하는 국내 최초 종합에너지 회사로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86세로 영면할 때까지 계열사 20여 개의 대성그룹을 키워낸 해강의 경영철학은 ‘한 우물 정도경영’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을 줄여 ‘대성’이라 지은 회사명에서도 이러한 그의 뚝심을 읽을 수 있는데, 그는 항상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 체형에 맞는 사업을 일구어 천천히 정도를 걷겠다”는 지론을 강조했다.
1960년대에 미국의 한 반도체 회사가 찾아와 인수 의사를 타진했으나 단박에 거절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문경새재의 대성산업 소유의 땅을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제안이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는 주흘산 입구 푯말에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 사업을 추진했던 해강의 사명감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