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서는 외국인 늘고 다양…법정통역 수준 어디까지

2016-02-15 11:30

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 "제가 조금 더 한국어를 잘한다면 직접 한국어로 설명해서 통역인을 통하지 않는 저의 진심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결심이 열린 지난달 15일 피고인 패터슨은 통역인의 도움을 받아 최후진술을 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며 재판부에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이날 법정에는 공판검사 뒤에도 통역인이 배석했다.

검찰은 앞서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미묘한 통역 차이로 진실을 밝히는 데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검찰 측 통역인을 따로 두겠다고 했다.

한국 법정에 서는 외국인이 늘고 다양해져 제대로 된 법정 통역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1심 형사공판에 기소된 외국인 수는 2012년 3243명에서 2014년 3789명으로 늘었다.

따로 대법원에서 집계하지 않는 임금체불 등 민사 사건이나 이혼 등 가사소송까지 포함한다면 외국인이 법정에 서는 사례는 줄곧 증가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법원에 등록된 법정 통역인은 2015년 기준 29개 언어 1736명이다.

중국어가 329명으로 가장 많고 영어 314명, 일어 224명, 베트남어 133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힌두어·미얀마어·방글라데시어·카자흐스탄어 통역인도 있다.

각급 법원은 법정 통역인을 선발하기 위해 공공단체·연구기관 등에 추천을 의뢰하거나 법원 홈페이지에 공고를 띄워 통·번역인 후보자 명단에 올릴 사람을 찾는다.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적정 수준의 외국어 능력과 법률지식을 가졌는지 이력서·자격증·재직증명서 등을 통해 조사하고 면접을 거쳐 확인한다.

피추천인이나 신청인의 동의를 받아 범죄경력 조회도 한다.

이처럼 통역인 규모가 늘고 그 다양성이 확대되는데 맞춰 통역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 공판에서 법정 통역인을 맡았던 주미혜(57·여)씨는 "서울중앙지법은 통역인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2시간 정도 교육을 한다"면서 "언어별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규범적 수준에만 그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씨는 "새로 선발된 통역인들이 (법원에서) 뽑아놓고 연락이 없고 기회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한 사람이 몇 개의 사건을 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전적으로 통역 일에 많은 힘을 쏟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법정 통역 보수는 통역·번역 및 외국인 사건 처리 예규에 근거해 30분 단위로 산정된다. 최초 30분은 7만원, 이후부터는 30분마다 5만원씩 지급한다.

사건마다 통역의 난이도가 다른데도 이를 보수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어려운 사건을 맡으려는 통역인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나아가 법정 통역인의 언어능력 검증시스템과 전문가로서 법적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2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안성훈 박사 등이 내놓은 '형사사법절차상 사법통역의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는 "사법통역인의 수준이 균질적이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처럼 자격인증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판례를 통해 사법 통역이 하나의 권리로 인정됐고 1970∼1980년대 사법통역 프로그램을 제도화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각 주에서는 공인 사법통역인 시험제도를 도입해 엄정하게 자격을 심사하고 통역인들에게 전문가적 윤리규정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보고서는 한 법정에 통역인 2명을 배치해 한 명이 통역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하게 해 통역 질과 정확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