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18 관광도시 강화도엔 현존 최고 사찰 전등사가 있다
2016-02-12 09:14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을 통한 인천 가치 재창조 시리즈
아주경제 박흥서 기자 =인천의 168개 보물섬 가운데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일컬어진다.
강화군은 지난 1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 공모 결과 ‘2018 올해의 관광도시’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역사관광지이다. 선사 시대 고인돌 유적, 단군의 얼이 담긴 마니산과 참성단, 고려시대 제2의 수도로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근대 개항 시기 발발했던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강화도에서 펼쳐진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이기도 했다.
강화도에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사찰 ‘전등사(傳燈寺)는 그 대표적 문화유산 중의 하나다.
하지만, 1942년 편찬된 「전등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에 의하면 전등사는 “신라 아도화상이 세운 바이니,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 절의 옛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이다.”라고 해 전등사가 381년(소수림왕 11)에 창건된 진종사였음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1916년 「전등사 대웅보전 급 대조루 제4도 중수기문」에도 “전등사는 아도화상이 세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海東鼻昌佛宇)”라고 하고 있다.
한편, 전등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고구려의 이불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과 같은 인물인지, 아니면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묵호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전등사의 창건연대(381년)가 백제의 불교 공인 연대(384년)에 앞선다고 하여 신빙할 수 없는 기록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 공인 이전에도 사찰은 얼마든지 세워질 수 있었고, 당시의 백제는 하남위례성을 수도로 하는 ‘한성백제’시기였던 만큼 한강의 입구인 강화도를 통해 불교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전등사의 처음 이름인 진종사는 글자 그대로 참된 종교, 혹은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뜻이었는데, 전등사로 개명하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때(1282년)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는 명칭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전등사는 조선시대 두 차례(1605년과 1614년) 큰 화재로 사찰 전부가 소실됐지만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하여 1621년 2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 네 기둥 위에 원숭이 형상의‘나부상(裸婦像)’으로 유명한 전등사 대웅전(보물 178호)도 이때 중건됐다.
1707년(숙종 33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를 관리하는 사찰이 되어 전등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근대 개항 전, 전등사는 병인․ 신미양요 등 국란에서 나라를 수호하는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했다. 또한 창건 이래 많은 인사들이 꾸준하게 찾는 수도권 최고의 호국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전등사 경내에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 보물(5점)을 비롯해 인천시 문화재(10점)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시 관계자는 “역사의 섬에 창건된 최고(最古)의 사찰 전등사는 여러 국난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를 지켜냈다.”며 “이러한 사실을 알고 강화도를 방문해 보석과 같은 강화의 여러 역사문화유산을 둘러본다면 한층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