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조중훈 “사업은 예술이다”

2016-01-11 15:47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7)

정석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사진=한진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베트남에서 고생해 모은 돈을 '밑 빠진 독'에 쏟아부을 수 없다.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 본사가 보유한 항공기는 8대, 그나마 DC-9 제트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명이 다 된 프로펠러 비행기다. 빚만 27억원에 달한다. 가망도 없는 항공사를 맡을 이유가 없다”

1960년대말 부실 덩어리 공기업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세번이나 거절한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가 청와대를 다녀온 뒤, 임원들을 소집해 이 이야기를 꺼내자 중역들은 일제히 강력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사실 정석도 내키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1966년부터 월남전에 참여해 외화를 꾸준히 확보하고 있었다. 또 1968년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일부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한진고속이 호황을 맞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자투성이 항공공사를 인수하면 경영상태가 악화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겠소. 국적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보는 게 소원이요”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요청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정석은 임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결과만 예측하고 시작하는 사업, 이익만 생각하고 수단과 강법을 가리지 않는 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사업이 아니다. 만인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이라면 만가지 어려움과 싸워나가면서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기업의 진정한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의 말에 임원들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한진그룹은 1969년 항공공사를 인수했다. 정석은 “처음엔 지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고 격려했다. 25세 때인 1945년 트럭 한대로 한진상사를 설립해 5년만에 중견 화물운송업체로 도약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정석. 신용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선 경험이 있는 그는 무모하지만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1969년 항공공사를 인수한 정석은 길고 험난한 경영 정상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냉전 체제와 북한의 도발이라는 예측불허의 변수에 쉽지 않은 항공노선 확보 등의 난제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다른 항공사가 꺼려하는 곳을 경유하는 조건 등으로 노선을 하나씩 확보해 인수 20여년만에 대한항공을 국제적인 항공사로 변모시켰다.

1977년에 발족한 한진해운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로 해운시장에 극심한 불황이 닥쳤지만 잘 이겨낸 끝에 1995년 매출 1조9000억원을 달성하며 국내 1위 선사로 성장했다.

정석은 평소 “사업은 예술이다”는 지론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그에게 사업은 예술작품과 마찬가지였다. 사업을 구상할때도 화가처럼 심사숙고해 밑그림을 그렸고, 필요한 자료를 총망라해 조심스럽게 색을 입혀갔다. 그는 예술가가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장인정신을 발휘하듯 사업에 몰입,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기업은 사업가에게 예술작품과 같다. 남을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혼을 담아야 한다. 사업가의 창의력과 아이디어, 노력이 뒷받침됐을때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예술에서 완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사업은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