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67년 5월1일 대한해운 소속 화물선 엔젤호가 부산항을 빠져나갔다.

태국으로 향하는 이 선박에는 시아후아트(Sia Huat L.P.) 등으로부터 주문받은 나일론 트리코트 5만5000야드가 실려 있었다. 1만4300만 달러어치였다. 원단을 수출한 회사는 대우실업. 사장을 포함한 직원 수는 8명, 자본금 500만원에 불과한 신생 회사였다. 놀랍게도 대우실업은 설립 두달이 채 안돼 벌써 30만 달러어치를 수주했다.

주인공은 대우그룹 창업자인 청년 김우중이었다. 갓 서른을 넘긴 그는 대학 졸업 후, 한성실업에서 무역 업무를 익히고 대우실업을 설립, 해외 영업을 책임지고 있었다.

동남아시장에서 ‘트리코트 김’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트리코트지 한 품목으로 그해 58만 달러 수출에 성공했다. 당시 한국 전체 수출액의 11.2%에 달하는 실적이었다. 이후 대우실업은 1972년에 국내 2위의 수출기업이 됐다. 1974년에는 삼성, 쌍용과 함께 한국 최초의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은데 이어 1978년에는 수출 1위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사업시작 11년만에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비결은 ‘세계’, 즉 '글로벌'이었다. 김 회장은 "대우는 처음 사업을 벌일 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대우가 창업할 당시에는 '수출하면 오히려 밑진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일반화된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감하게 해외 시장의 개척에 착수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혀를 끌끌 차는 일에 과감하게 도전해 성공함으로써 우리가 이제까지 못한 것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해 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단념해 버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탄탄한 금융 지식 등을 바탕으로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 부실기업을 잇달아 인수,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기업을 성공시킨 노하우도 ‘수출’‘해외시장 개척’이었다.

1990년대부터 세계정세가 급변하자, 김 회장은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를 모색하던 국가에 선제적으로 진출해 현지 기업을 인수하고 성공을 거뒀다.

젊은이를 사랑했던 김 회장은 옛 대우맨과 함께 실업난 등으로 실의에 빠진 젊은이의 해외진출을 돕고 있다. 그는 젊은이에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강조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려고 해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해야 한다. 역사는 그런 사람의 발걸음에 의해 조금씩 전진해 왔다"며 "그런 사람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려고하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려는 그들을 우리는 개척자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