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기업 성공 스토리] ①알리바바의 '크레이지 잭', "내일이면 온 세상이 우리를 알 겁니다"

2015-12-16 18:37
왜 전 세계는 마윈에 열광하는가

마윈 알리바바 회장. [사진=신화사 제공]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27조원 재산의 아시아 최대 IT부자는 어릴 적 가난했다. ‘빽’도 없었다. 그의 부모는 평탄(評彈·노래와 말로 풀어내는 중국 항저우 지방의 설창예술) 배우였다. 남들이 형편없다고 하는 대학에 삼수 끝에 들어갔다. 졸업 후 대학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다. 한 달 수입은 12달러(약 1만4000원)에 불과했다. 출장차 방문한 미국에서 ‘인터넷’에 매료됐다. 1995년 자국으로 돌아가 중국 최초의 기업 웹사이트 ‘차이나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외로웠다. 누구도 날 믿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죽도록 버텼고 지금 그는 세계 IT기술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거물이 됐다. 올해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11월11일)에는 하루 동안 16조5000억원의 어마어마한 매출을 냈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보다 2조원 많은 시장 규모다. 포브스는 2000년 그를 중국인 최초의 표지 인물로 등장시켰다. 162cm 45kg의 깡마른 체구로 세계를 휘어잡은 ‘작은거인’. 그는 바로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馬云·영문이름 잭 마·51)이다. 지극히 평범함 속에서 혁신을 일으킨 그의 기업가 정신을 따라가보자. [편집자주]


마윈 회장은 ‘IT 버블’이 절정이던 1999년 인터넷 상거래기업 ‘알리바바’를 창립했다. ‘B2B(기업 간 거래) 인터넷 중개 사이트‘라는 비즈니스모델을 창안한 것이다. 사실 창립 몇해 전까지 중국에 ‘전자상거래’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3년 동안 수익이 없었다. 다들 비웃었다.

알리바바 창업 이후 해외 매체 홍보에 열을 올리던 마윈 회장은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인터넷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가 “현재 우리 사이트는 수익이 없다. 관심을 끌기 위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설명하자 진행자는 “거창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돈을 벌지 못하면 허풍과 다름 없다”고 공격적으로 말했다. 마윈 회장은 당황한 기색 없이 웃음을 띠며 “그게 인터넷”이라며 “내게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업을 시작했다”며 “중국은 문호를 개방하고 있고 더 힘든 상황을 겪겠지만 알리바바는 80년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윈 회장은 성공을 확신했다. 그는 ‘혁신’의 힘을 믿었다.

알리바바는 중국이나 미국에서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됐다. 1990대 말 전자상거래 회사들이 다들 대기업에 초점을 맞출 때 알리바바는 오로지 중소기업에 집중했다. 마윈 회장은 인터넷 시대에는 대기업 모델이 막을 내릴 것이라 예상했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다양한 정보를 빨리 접해 거래나 결제 위한 사업 전략이 먹힐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자와 사업자가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매개로 거래하는 알리바바의 새로운 방식은 아시아 시장에 딱 맞아 떨어졌다.

마윈 회장의 남다른 안목과 혁신에 힘입어 알리바바는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 시가 총액 2314억달러(약 240조원)로 페이스북과 아마존을 앞질렀다. 알리바바의 올해 2분기(7~9월) 매출은 34억9000만달러로 순이익은 35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마윈 회장은 IT버블이 꺼진 2003년 개인 간 온라인장터 '타오바오(淘宝网)'를 만들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의 언급이 계기가 됐다. 손 사장은 “이베이가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야후가 이미 이베이를 제쳤다. 이제 중국, 마윈 당신의 차례다”고 했다. 사람들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주무르던 이베이를 경쟁상대로 삼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마윈 회장은 ‘3년간 등록 수수료와 결제 수수료 무료’ 전략을 펼쳤다. 결과는 마윈의 승. 이베이는 결국 중국에서 철수했다.

마윈은 ‘중국판 포브스’라 불리는 후룬 연구원이 ‘2013년 중국 10대 혁신 기업가’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