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쓴소리’ 이만섭 전 국회의장 별세…향년 83세
2015-12-14 20:32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원조 미스터 쓴소리’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4시3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8선의 이 전 의장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거쳐 지난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31살의 나이로 ‘세대 돌풍’을 일으키며 국회에 진출했다. 그는 6대 의원을 시작으로, 7·10·11·12·14·15·16대에서 의원을 지냈다.
특히 14·16대 국회에선 국회의장을 맡으면서 한국 정치의 대표적인 원로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고인은 타고난 강골 기질로 정치적 시련이 적지 않았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지만, 7대 국회인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서면서 당시 정권 실세였던 이후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후 이 전 의장은 약 8년간 정치활동의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 이 전 의장은 14대 총선에서 ‘3당 합당’의 산물인 민주자유당(민자당) 전국구로 다시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1993년 재산공개 파문으로 낙마한 박준규 국회의장에 이어 입법부 바통을 이어받은 이 전 의장은 같은 해 12월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 ‘미스터 쓴소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 대표 서리를 맡았던 이 전 의장은 이회창·이인제·이홍구·이수성·박찬종·최병렬 후보 등 이른바 ‘9룡’이 참여한 경선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창당하자, 전국구 의원직을 버리고 신당 대표로 취임한다.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한 셈이다.
◆국민신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타고난 관리형 대표
1997년 대선 이후 이 전 의장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손을 잡았다. 이인제 후보와 이 전 의장, 6명의 현역 의원은 1998년 9월 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을 선언했다.
그의 ‘합리적 중재 리더십’은 여기서도 빛났다. 이 전 의장은 1999년 7월 상설특검제 도입을 놓고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정권을 이룬 국민회의와 자민련 지도부 간 갈등수습 국면에서 총재권한대행을 맡았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는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 전 의장은 그해 총선에서 또다시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 두 번째 국회의장을 맡게 된다.
일각에선 이 전 의장이 국민신당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에서만 생활, 양지만 찾아다닌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국회의장 시절 날치기 사회를 거부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의회주의의 역사를 개척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정치 입문 전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이 전 의장은 제1공화국 시절 당시 의사당 기자석에서 “자유당 이 X들아”라고 고함을 지른 일화가 있다. 당시 박정희 의장의 눈에 거슬리는 기사를 써 필화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4년 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이 전 의장은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으면서 여야 정치 인사들에게 ‘훈수 정치’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씨 등 1남 2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