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기’, 끝까지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청암 박태준’이 하고 싶었던 말은···
2015-12-13 10:35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여든 다섯이 됐으면 좀 편해질까 했는데….”
지난 2011년 3월 22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11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경제 현안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혼자말로 이렇게 말했다. 편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여든 다섯의 나이에도 편할 수 없었던 그의 불안감은 무엇이었을까?
그해 12월13일 박 명예회장은 여든 다섯 이승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올해는 4주기를 맞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가 없는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박 명예회장이 이뤄낸 포스코 도전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의 답은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포스코의 부활의 해법은 박 명예회장이 보여준 기업가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절대적 절망’‘절대적 불가능’‘절대적 사익’이 없었다. 오로지 불가능을 절대적으로 부정해 절망에 빠지지 않고, 포스코를 세계 공기업 사상 유례없는 기업으로 일궈냈다.” 송복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2011년 6월 학술지 ‘한국정치연구’에 발표한 ‘특수성으로서의 태준이즘(Taejoonism) 연구’ 논문을 통해 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이 같이 평가했다.
미국과 유럽의 돈줄이 완전히 막힌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박 명예회장은 대일청구권자금 전용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절박한 사명감의 선물이었을 그것은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이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그 돈을 조상이 흘린 피의 대가라고 정의했다.
“실패하면 스스로 죽겠다고 맹세했지만, 죽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다”는 그는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 정신’을 실천하며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절망, 불가능은 금기어였고, 오로지 성공만 추구했다. 이런 그의 집념은 포항과 광양에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초대형 일관제철소 완공으로 결실을 맺었다. 세계 철강사의 한 획을 긋는 대업의 완수를 이뤄낸 박 명예회장은, 단 하루 영광을 누린 뒤 어떤 사익도 추구하지 않은 채 미련 없이 포스코를 떠났다.
생전 그는 “도전과 창의는 맞물린 것이다. 도전의 과정에서 창의가 자극되고, 창의가 발현돼야 도전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언제나 면면히 흐르는 포스코의 기업정신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도전과 창의를 실천해 ‘대성취’를 이뤄냈다.
그렇다면 박 명예회장이 기자에게 들려준 여든 다섯의 나이에도 편하지 못한 심정을 ‘도전과 창의로 무장해 실천하는 기업가 정신의 실종’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와 평생 벗이었던 조정래 작가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박 명예회장 영결식 당시 조사에서 ‘한국의 간디’라며 고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인도인이 간디에게 ‘성스러운’ 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를 붙여준 것처럼 저도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이라고 칭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간디가 죽고 난 뒤 인도인들은 간디가 걸어갔던 길을 걸으려 하지 않고 있다. 힘들고 외롭기 때문”이라며 “아마 한국인도 마하트마 박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박 명예회장은 우리의 영원한 사표이자 보물이다”고 전했다
지금 포스코와 한국경제는 힘들고 외로운 길을 자처하며 묵묵히 걸어가 대성취를 이뤄낸 박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어느 때보다 아쉬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