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No.1 코리아]“명품 자동차에 한국산 옷을 입히다, 최고 품질 철강”
2015-11-18 06:0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당시 최우선 목표는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무르익어 가면 우리 사람, 우리 환경에 맞도록 최적화시켜 나가는 기술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방법은 오로지 ‘열심히 하는 것’ 하나였습니다”
1969년 3월 1일 포스코 공채 1기로 입사한 13명중 한명인 홍상복 전 포스코 부사장은 한국 최초의 고로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며 겪었던 기술개발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포스코는 설립 초기 종합기술개발 발전계획을 만들며 일본을 따라잡는 데 목표를 뒀다. 일본의 조업·품질 지표는 한국보다 3~4년의 격차를 두고 앞서 있었다. 20세기 초에 이미 근대적 제철소를 세워 운영해 왔으니 수준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포스코맨들이 더 열정을 바쳐야 하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산업은 해당 국가의 철강 수요산업 성장과정과 함께 발전한다. 범용 강철과 놋쇠와 함석 등으로 그릇과 지붕, 못, 나사, 드럼통 등을 주로 만드는 국가에서 배를 짓는데 쓰이는 후판이나 기계 등을 만드는 소재인 열연강판 등은 필요없다.
즉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은 장기간에 걸쳐 산업의 성장굴레와 맞춰 철강산업이 생산하는 제품군이 고도화됐다. 하지만 불과 10년여 만에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가 탈바꿈한 한국은 못부터 냉연강판까지 모든 제품군에 걸쳐 수요산업의 요구가 컸다. 이런 제품을 한꺼번에 만들어내야 했으니, 그만큼 포스코 기술진의 어깨는 무거웠다.
그러다보니 포스코에 우호적이던 일본 업체들은 1980년대 들어 광양제철소 건설에 착수할 때부터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무섭게 따라오는 포스코의 기술력을 감지하고는 부메랑 효과를 우려한 것이었다.
일본 제철소를 견학할 때에는 정보유출을 철저히 차단했고, 기술교류에서도 계약 범위를 엄격히 지켰다. 오죽하면 신일본제철 일본 제철소를 방문한 박태준 당시 포스코 회장은 뒤따라오는 직원들이 꼼꼼히 살펴보고 매뉴얼을 외울 수 있도록 일부러 제철소 현장을 천천히 걸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일본의 뒤를 따라만 갈 수는 없었다. 모방, 추격 단계를 거친 포스코는 이 때부터 자력개발 단계로 들어간다. 포스텍 설립과 부설연구소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의 독립 법인화를 통해 포스코는 이들 기관과 제철소 현장을 연결한 산·학·연 협동 연구체제를 구축했다. 독자적 기술개발이 탄력을 받게 되자 서서히 일본을 따라잡거나 넘어서기 시작했다.
포스코의 철강 기술발전은 크게 ‘공정기술’과 ‘제품 개발기술’로 나눠 추진됐다. 전자가 엔지니어링 관련 분야라면 후자는 야금 관련 분야다.
공정기술은 다시 △제선·제강·압연 등 각 공정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단위공정 기술 △기존의 공정을 생략·단축·연속화하는 기술 △반대로 기존의 공정을 세분화·전문화하는 기술 등으로 나뉜다. 포스코가 이런 첨단 공정기술을 적용한 것이 1980년대였다. 이를 기초로 당시만 해도 불가능하리라던 극한 레벨까지 현재 생산과정을 컨트롤하고 있다.
철강업계의 경쟁력은 원가경쟁, 즉 같은 원료를 투입해 얼마나 많은 쇳물을 생산하는가이다. 예를들어 고로에 저급 원료를 쓰면 노황(爐況) 악화를 불러오고 출선비가 떨어진다.
하지만 포스코는 저급 원료로 고출선비를 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적용한 것이 바로 파이넥스(FINEX)다. 일본 업체들이 이 기술을 배우러 포스코를 찾아오고 있다. 주는 자료를 감사히 받아 공부하던 한국 철강산업이 반대로 일본에 기술을 가르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이는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제품 기술개발에서도 포스코는 뛰어난 성과를 이뤄냈다. 강은 강도가 높으면 연신율(늘어나는 비율)이 떨어지는 게 과학 이론적으로 상식이다. 이런 생각을 깨고 강도가 높으면서도 연신율이 뛰어나 가공성이 좋은 강을 포스코는 상용화했다.
트립(TRIP)강과 이를 한단계 더 발전시킨 트윕(TWIP)강이다. 두 강종은 전 세계에서 포스코만 유일하게 양산하고 있다. 내식성(부식이 일어나기 어려운 성질) 면에서 아연도금보다도 몇 배 뛰어난 고내식 합금도금강판인 포스맥(PosMAC)도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포스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강판을 해외 글로벌 자동차업계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자동차 메이커에서는 포스코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겨우 자동차 내판재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2009년 포스코는 해외 철강사로는 최초로 도요타 자동차 일본 본사에 자동차 강판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현재는 현대·기아차 도요타를 포함해 GM, 폭스바겐, 포드, 혼다, 닛산, 르노삼성, 쌍용 등 글로벌 ‘톱 15’ 자동차업체에 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공급량은 세계 자동차 강판 물량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이면 포스코는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반세기만에 한국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포스코의 성과는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