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선] 이병헌에게 최민수의 냄새가? -영화기자가 본 ‘내부자들’-

2015-12-11 16:50

[사진=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이정도면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해도 될 만하다.

영화 ‘내부자들’(연출 우민호·제작 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이 10일 누적관객수 535만581명을 기록했다. 역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최단기간 100만·200만·300만·400만·500만을 돌파,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숨 가쁘게 갈아치웠다. 이제 ‘내부자들’이 목표로 하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타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아저씨’ ‘친구’ 뿐이다.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내부자들’이 31일 3시간짜리 감독판을 재개봉 소식을 알린 가운데 영화 담당 기자 최송희(이하 최)ㆍ김은하(이하 김)ㆍ서동욱(이하 서)가 이야기를 나눴다.

서 : 흥행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주연 배우 백윤식, 이병헌, 조승우지. 다른 배우가 했다면 이만큼 흥행했을지 의문이야. 뭐 조승우의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말이야.

김 : 어색? 지방에서 나고 자라 오랜 서울 생활로 희석된 사투리라고. 우리 ‘오빠’가 친히 의도하신 거라니까. 그리고 조연을 빼면 섭섭하지. 특히, 골 아프게 밀린 일을 처리하듯 건조하고 무심하게 이병헌의 팔을 썰어대던 조우진은 강렬했지. 영화 절대강자인 씬스틸러라는데 그의 “여 하나 썰고”는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할려?”만큼 명대사야.

최 : 머리 긴 이병헌은 최민수 느낌도 나지 않았어? 비주얼은 ‘홀리데이’의 최민수를,능글능글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설정은 ‘모래시계’의 최민수를 모티브로 삼은 것 같은데? 영화 소재도 ‘모래시계’와 비슷하고 말이야.  화장실에서 장발에 돈 뜯는 건 영락없는 최민수 딱이던데.

김 : 사실 썩어빠진 정치, 경제, 언론 그리고 그들의 유착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제는 너무 흔해서 하나의 장르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야. 너무 지루하고 쉬운 일이 됐지.

최 : 그게 흥행 포인트 아닐까? 관객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 말이야.

서 : 전형적인 전형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너무 뻔한 게 반전인 반전이나 작품 전체에 뿌려진 클리셰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이렇게 힘을 잔뜩 줬는지 모르겠어.

김 : 시나리오 초고를 받고 조승우도 “영화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고 했대. 그래서 많이 덜어냈다던데? 기존에 진지하고 무거웠던 이병헌 캐릭터가 덜 떨어지고 모지리가 된 것도 그 때문이고.

최 : 이병헌의 희생이 빛나긴 했지만, 영화 전반에 잔뜩 들어간 힘을 풀진 못했다고 생각해. 강약 조절 없이 2시간 내내 무겁게 짓누르니까 반전의 묘미도 덜 산 것 같고. 우리 모두 ‘내부자들’의 반전에 짜릿한 희열을 느끼지는 못했잖아.

서 : 마지막이 압권이었지. 지저분하고 코딱지만 한 사무실에 껌이나 씹고 있는 경리와 함께 일하는 조승우라니…게으르게 전형을 답습하면서 중도도 지키지 못한 연출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했어. 지방 좌천 정도가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김 : 너 진짜 야박하다. 엄청나게 고급 관객이시네요. 어쨌거나 500만 관객을 넘긴 청소년 불가 영화 아니야. 관객에게 먹힌 포인트가 있을 거라고.

서 : 이 영화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거야? 명백하지. 러닝타임이 3시간이 아니라는 것. 아! 그리고 권력층의 유흥 문화를 흥미롭게 그렸다는 것.

김 : 맞다맞다! 발기된 성기로 술잔을 쓰러뜨려 폭탄주를 마는 장면은 진짜 압권이었어. 너무 신선해서 징그럽다느니 저질이라느니 하는 생각은 들지도 않던 걸. '도미노주'인지 '충성주'인지 남자XX들은 진짜 그렇게 놀아? 30대 남자가 보기에는 어때?

서 : 다 단계가 있지. 그 정도는 윗분들이나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나도 잘 몰라.

최 : 우리끼리 웬 내숭. 우민호 감독도 자기도 모른다고 엄청 잡아떼더라고. 원작에 전적으로 충실한 거라고. 푸하하. 어쨌든 이경영과 백윤식의 엉덩이 연기가 빛났지. 젊은 조승우 엉덩이도 안 나오는데 말이야.

김 : 조승우 엉덩이는 데뷔작 '춘향뎐'부터 봤으니까 뭐. 나는 이병헌 라면 먹는 장면에서 침이 고여 죽는 줄 알았어. CF랑을 차원이 다르게 사실적이잖아. 뜨거워서 면을 토하듯 뱉어내는 것까지 말이야. 근데 왜 라면을 옥상에서 먹었을까?

서 : 아…당연히 담배 펴야 하니까 그렇지. 식후땡 몰라?

최 : 여튼 나는 ‘내부자들’은 이병헌 영화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인가를 뿜어내는 이병헌의 존재감이 빛났지. 50억 협박사건으로 대중에게 밉보였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이병헌은 까도 이병헌 연기는 못 깐다”는 인식을 다시 확고히 했으니까.

김 : 아! 왜 우리 ‘오빠’는 빼? 조승우가 무대에서 뿜어내던 에너지를 스크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귀한 경험을 하게 한 영화지. 뭐, 뻔하긴 해도 호쾌한 한방이 있는 점도 매력이고. ‘어른동화’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