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경희 유품, 대구시민 품에 안기다

2015-11-29 16:12
이승만·김구와의 서신 등 유품과 자료 717점 대구시에 기증

이경희 선생의 선친인 이병두(李柄斗) 옹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서신인 칙유 기증 유물. [사진제공=대구시]


아주경제 최주호 기자 =독립운동가 이경희 선생의 딸 이단원 씨가 부친의 유품 및 자료 등 717점을 대구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경희 선생, 긴급하게 협의할 일이 있으니, 6월 5일 오전 10시에 아무도 모르게 나를 찾아 왔으면 하오….”

1947년 5월 29일 당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 총재(부총재 김구 서신 공동 발신)가 독립운동가 이경희(李慶熙·1880~1949) 선생에게 보낸 서신 4점의 내용 중 일부다.

이경희 선생의 딸 이단원 씨(82·경기 양평 거주)는 이 서신을 포함해 60여 년간 소중하게 간직해온 이경희 선생의 유품과 관련 유물, 자료 등 717점을 최근 대구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에 권영진 대구시장은 30일 오후 2시 30분 대구시청에서 이단원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단원 씨가 대구시에 기증한 유물은 이경희 선생과 이승만․김구 선생 간 비밀편지 4점 등 독립운동 관련 유물 19점이다.

또한 이경희 선생의 선친인 이병두(李柄斗) 옹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서신인 칙유 1점도 기증 유물에 포함돼 있다. 이 서신 내용은 고종이 언제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뜻을 인편으로 보낸 것이다.

이병두 옹은 한의사이자 한학자이며, 경북지역에서 노비해방을 처음으로 단행한 개화기의 선각자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단원 씨가 개인적으로 수집해온 백남준 판화 2점 등 미술품과 도자기류 등 31점, 개인소장 도서․자료 667점 등도 기증 대상에 포함됐다.

이 씨는 부친의 항일운동으로 가세가 기울어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미술품과 도서류 등을 수집해 왔다.

이단원 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은 마땅히 백성 된 양심으로 한 것이니 독립유공이니 뭐니 자랑 같은 것은 하지 마라’고 하셨다”면서, “아버지가 남기신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들 유물을 대구시에 맡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이 독립운동의 정신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후대에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라 잃은) 못난 나’라는 의미인 지오(池吾)를 호(號)로 삼은 이경희 선생은 1880년 대구 무태에서 태어났다.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와 안동에서 교편을 잡던 중 나라가 망하자 독립운동에 나섰다.

선생은 1922년 항일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1923년에 조선총독부 폭파를 계획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5년 광복 후 경북도부지사, 대구부(府) 초대부윤(府尹· 1945∼46),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북도지부장, 남선경제신문(현 매일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구망우공원에 공적비가 있으며,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금오공대 김일수 교수(한국근대사)는 “기증 유물 중 이경희 선생과 이승만․김구 선생 간 비밀편지 4점은 해방 후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신탁통치반대운동을 공통분모로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통합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가 결성됐다. 이 단체 발족 당시 이승만이 총재, 김구가 부총재를 맡았다.

이 서신 4점은 이 단체가 각 도로 보낸 밀신 가운데 하나로, 당시 긴박하게 흘러가던 정국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로 평가된다.

이단원 씨의 기증품 중 서신 등 주요 유물은 대구근대역사관 상설전시장 독립운동 부스에 전시될 예정이며, 대구근대역사관은 이번 유물 기증을 계기로 내년 상반기에 일제강점기 대구출신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최현묵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은 “대구출신 독립운동가인 이경희 선생의 유물은 지역 독립운동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며, “오랜 세월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물을 흔쾌히 기증해 주신 이단원 할머니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유물들은 나라사랑에 앞장서 온 선열들의 정신을 배우고, 대구시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