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이상동몽'
2015-11-25 09:36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우중(79) 전 대우그룹 회장의 관계는 '이상동몽(異床同夢)' 쯤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정(政)과 경(經)이라는 다른 자리에서 대권, 세계, 월드컵 등 같은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이 품은 꿈은 매우 닮아있었지만 종착지가 달랐던 탓에 때로는 악연(惡緣)으로, 때로는 선연(善緣)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세계화'와 '세계경영'을 부르짖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한다.
문민정부 초기인 1994년 김 전 대통령은 세계화 구상을 공개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기업 등 모든 주체들이 선진국 수준으로 변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앞세워 모든 역량을 해외 시장으로 집중했다. 그 결과 1998년 말 대우그룹은 396곳의 해외 현지법인, 21만9000명의 해외임직원, 41개의 국내계열사, 10만5000명의 국내임직원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같은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전략은 김 전 대통령의 세계화 구상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대우기업의 해외진출 행보를 좇아 국내 여러 기업이 세계 각국에 공장과 법인을 세우게 됐고, 이는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활성화시키고 한국을 세계로 알리는 기점을 마련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의 섣부른 세계화 추진은 위기관리 부재를 낳았고,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촉발하게 된다. 이를 통해 '개혁의 기수'로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경제무능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세계경영을 앞세워 과도한 확장 투자에 나섰던 대우그룹 또한 IMF를 맞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고, 이는 대마(大馬) 중의 대마인 대우그룹 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분기점이 됐다.
아울러 두 사람 모두 대권의 꿈을 품었었다. 김 전 회장은 문민시대의 출범을 알린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계획하고 있었고, 이는 두 사람 간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세계경영을 외친 이면에는 문민정권과의 갈등이라는 배경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 출마설로 김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대우그룹이 국내에서 더 이상 제대로 된 투자를 하기 어려워지자, 일찍부터 해외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많아 봐온 김 회장이 해외진출로 살길을 마련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문민정부 기간 이뤄낸 스포츠 분야 최대 업적인 '2002년 월드컵'과도 맞물려 있다.
스포츠 매니아로 알려진 김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당시 월드컵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결국 집권기간 동안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이뤄냈다.
김 전 회장 또한 대우그룹 총수시절 계열사 간 축구대회에서 매번 선수로 뛸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진다. 프로축구가 출범한 1983년 대우로얄즈를 만들고, 학교 내 축구단을 만들어 인재 육성에 나서는 등 축구에 관한 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았던 김 전 회장은 1990년 6월 2002년 월드컵 유치 의사 표명을 담은 서한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보내기도 했다. 이후 경기장 건설 등 여러 부문의 재정부담을 이유로 논의에 진척이 없었지만, 김 전 대통령 취임 이후 큰 힘이 실리면서 결국 월드컵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와 함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신장섭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김영삼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막후에서 뛰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 때는 특사 같은 직함을 받아서 공식적으로 역할을 한 것은 없지만,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언질을 받아놓은 게 있었고, 김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