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K 세일이 뭐예요?"…정부 앞장서 만성화 시키는 세일·세일·세일

2015-11-23 00:01
소비자 급조한 행사 이어지면서 오히려 구매의욕 하락…정가는?
정부 치적 쌓기에 혈안…정기 세일 실적을 행사 실적으로 포장

[민간 주도로 지난 20일 'K 세일'행사 시작된 가운데 21일 오전 한 인천의 대형마트 매장 내부 모습. 이 점포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조차 'K 세일' 안내 홍보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진=정영일 기자]


아주경제 정영일 기자 = “K 세일이 뭐예요? 저희는 지금 창립 세일 중인데.” “K 세일요? 저희(점포)는 다음 주말 '몰빵 데이' 행사하는데 잘못 알고 오신 것 같아요.” “K 세일 행사 품목요? 몇 가지 안 돼요. 그냥 주말 특가 제품 사시는 게 이익입니다.”

‘K 세일’ 행사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1일과 22일 경기도 부천과 인천, 서울 영등포 지역에 위치한 3개 대형마트 점포와 하이마트·전자랜드 등 전자제품 양판점 등 총 15곳을 둘러보면서 해당 점포 안내데스크나 매장 관리자들을 통해 가장 많이 들은 답변이다.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K 세일데이(이하 K 세일)’는 10월 1~14일까지 열렸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이하 코리아 블프)’ 행사의 2탄 성격으로 기획됐다. 코리아 블프와 이번 K 세일이 다른 점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행사 주관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코리아 블프는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올해 처음 기획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충격으로 침체된 소비 심리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까지 외국인 관광객만 대상이던 '코리아 그랜드 세일'을 내국인까지 확대한 것이다.

반면 K 세일은 민간 주도로 유통산업연합회가 앞장섰다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와 연합회의 주장이다.

지난 코리아 블프 행사가 정부에서 급조해 행사를 벌이는 바람에 △제조사들의 참여가 한 곳도 없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낮은 할인율과 △상품 구성의 다양성 결여 △백화점 위주의 흑자 △이른바 ‘미끼 상품’으로 소비자를 현혹시켰지만 재고 처리 수준으로 상품들로 판매업체만 득이 된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뒤를 한발 물러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산업부는 코리아 블프에 백화점(71개 점포), 대형마트(398개), 편의점(2만5400개) 등 대형 유통업체 2만6000여개 점포가 참여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여기에 200여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11번가 등 16개 온라인 마켓 외에 중소 쇼핑몰들도 참여해 사실상 거의 모든 유통업체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총 점포수는 참여 업체의 모든 점포 수를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때문에 이번 K 세일에선 참여 점포 수는 밝히지 않았다. 제조사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제일모직 2개 업체가 참여했다고 홍보했다.

코리아 블프 행사 후 산업부는 전년 동기(2014년 10월 2~15일) 대비 백화점 3개 업체는 총 24.0%(2669억원), 대형마트 3개 업체 3.6%(357억원), 온라인 쇼핑몰 11개 업체 28.9%(2161억원), 전자제품 전문점 2개 업체 20.9%(353억원), 편의점 3개 업체 36.3%(1654억원) 등 평균 20.7%의 매출 증가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금액으로는 7194억원에 달했다.

또 백화점의 경우 최근 수년간 매출 증가가 정체된 상황에서 코리아 블프를 통해 매출이 두 자릿수(24%) 증가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K 세일에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온라인 마켓들이 이미 정해놓은 세일 기간에 ‘K 세일’이라는 타이틀이 무임승차해서다. 각 점포에서도 K 세일을 홍보하기보다는 자사 세일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한 점포 매대 관리자는 “밤낮없이 벌어지는 세일에 어느 것이 정가인지 모르겠다”며 “게다가 지난 코리아 블프와 이번 K 세일까지 이름 붙여지면서 소비자들도 헛갈려한다”고 지적했다. 이 매장에선 본사에서 내려보낸 부착용 K 세일 안내문을 매장 한 곳에 쌓아 놓고 방치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백화점 관계자는 “국내 주요 백화점들의 세일 기간이 연간 100일에 이른다는 지적이 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이 떨어지는 부작용과 함께 만성화된 세일로 제품 정가에 대한 거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데도 정부는 여러 업체의 실적을 묶어 치적으로 앞세우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해당 업체의 정기 세일로 인해 지방 점포에선 신경도 쓰지 않는 코리아 블프나 K 세일의 결과가 발표될 때는 웃음이 나온다”며 “미국판 블랙프라이데이처럼 오랜 기간 철저한 준비를 통해 소비자는 물론 참여 업체들도 도움이 되는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정부나 협회 차원에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