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영삼 전 대통령, 그는 누구인가

2015-11-22 01:49

[사진=인터넷]



아주경제 주진 기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향년 88세.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ㆍ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년 6월 항쟁' 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며 극과 극을 달린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지역을 포위한 '3당합당',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부(負)의 유산으로 기억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현철 씨가 있다.

다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연보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출생
▲1947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입학
▲1951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장택상(張澤相) 국회부의장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 손명순 여사와 결혼(슬하에 2남 3녀 둠)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거제에서 만25세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이후 5,6,7,8,9,10,13,14대 등 국회의원 9선). 3선 개헌에 항의해 자유당 탈당. 민주당 창당 참여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
▲1960 어머니 박부련 여사 북한 고정간첩에 의해 사망.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1963 군정연장 반대집회·가두시위로 서대문형무소에 23일간 수감. 제5대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 당선을 위해 민정당 대변인 활동.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1964 민중당 창당 참여
▲1965 민중당 원내총무 선출(최연소 원내총무)
▲1967 신민당 창당 참여. 신민당 원내총무 선출(5년간 5선, 최다선 원내총무).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1969 박정희 대통령 3선개헌 반대투쟁 주도하다 초산테러 당함
▲1970 40대 기수론 제창. 제 7대 대선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 출마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1972 유신 선포에 미국에서 급거 귀국해 가택연금 당함. 반유신투쟁 전개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대정부질의에서 박정희정부 테러행위 규탄
▲1974 신민당 총재 선출(만45세 최연소 야당총재)
▲1975 박정희 대통령과 여야 영수회담
▲1978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1979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재선출.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 때 경찰에 강제 연행. 법원 결정에 의해 신민당 총재 직무집행 정지. 국회의원직 제명
▲1980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3년간 불법 가택연금 시작
▲1981 민주산악회 발족
▲1983 민주화 요구 단식투쟁(23일간)
▲1984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발족. 민추협 공동의장에 추대
▲1985 신한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추대. 민족문제연구소 설립
▲1986 대통령 직선제 개헌 1천만 서명운동 전개
▲1987 신한민주당 탈당 후 통일민주당 창당. 6월 민주시민항쟁 주도. 통일민주당 총재. 제13대 대통령선거 출마(2위로 낙선)
▲1988 통일민주당 총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
▲1989 한국 정치인 최초로 소련 방문
▲1990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선언.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로 출마해 당선. 민주자유당 총재. 민주자유당 대통령후보 선출. 국회의원직 사퇴로 38년간 의정활동 마감.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
▲1993 대통령 취임
▲1995 신한국당 총재
▲1998 대통령 퇴임
▲2003 유석 조병옥 박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2004 북한민주화동맹 명예위원장
▲2008 한국티볼협회 총재
▲2011 범국민안보공감캠페인 명예위원장
▲2015.11.22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