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특별인터뷰] 박병원 경총 회장 "중국이 하는 것은 다 따라하라"
2015-11-16 15:47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질문이 필요없는 인터뷰였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차근차근, 꽤나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때때로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전반적으로 답답한 상황이라는 하소연 섞인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일명 '미스터(Mr) 바른 말'이란 별칭이 붙은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한국의 경제를 진단하면서 "최소한 중국만큼은 하자"고 말했다.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만큼 더 뛰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재정경제부 차관과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우리금융지주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 공직과 민간에서 두루 요직을 맡은 바 있는 '경제통'이다.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 2일 서울 대흥동 경총회관에 있는 박 회장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중국으로 인한 공급과잉, 공급과당경쟁 때문이다. 그럼 이걸 해소하기 위해 공급을 줄이자,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수요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럼 내수를 진작시켜야 된다."
-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인한 내수 위축이 회복기를 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본격적인 '내수 진작'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내수진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자, 우리가 지금까지 '포니(1976년 현대차가 출시한 국내 첫 양산형 자동차)'만 만들고 살았다면 소득 수준이 지금까지 이르렀겠나. 제조업의 질적 고급화를 통해 매출과 순이익, 고용을 두루 늘린 데 따른 결과다. 그런데 농업과 서비스업을 보자. 전혀 고급화와는 거리가 멀다."
- 농업과 서비스업을 고급화하는 게 내수 진작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인가?
"농업과 서비스업의 경우 고급화는커녕 가격을 낮출 궁리만 하고 있다. 농업의 경우 고급화는 안 하면서 쌀값만 올라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건 농업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농사짓는 거지. 농업의 경우 브랜드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부자들은 자국 쌀보다 10배나 비싼 일본 쌀을 사다먹는데, 왜 우리는 고급 농산물을 만들어 이 시장을 치고 들어갈 생각을 안 하나?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2007년에 은행이 15조원의 이익을 냈다. 그런데 은행이 이익을 내자 '서민과 중소기업을 등쳐서 수익을 냈다'는 비난이 컸다. 수수료와 이자를 깎으라고 요구하고, 사회공헌활동을 늘리라고 했다. 결국 작년에 은행의 순이익은 5조로 줄었다. 약 10조원 가량 줄어든 건데, 이렇게 되면 약 2조5000억~3조원 정도의 국가 세입이 감소하는 결과가 된다.
통신회사에 휴대폰 기본요금을 깎으라고 해서 연간 개인당 부담비용 1만2000원 정도가 줄었는데, 이게 내수 진작으로 이어지고 있나? 개인에게는 1만2000원이지만 통신 3사에서 그 돈을 모으면 6000억원이다. 그게 사라지니 국가 세수는 또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들면 국부는 얼마나 훼손되겠나."
- 회장께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산업에도 고급화가 시급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화가 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 지?
"작년에 중국 관광객이 600만명이 왔다는데, 관광 인프라만 잘 구축하면 수천만까지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시내의 경우 학교 앞 반경 200미터 안에는 호텔도 짓지 못한다. 각종 규제가 인프라 구축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겨우, 18년만에 설악산 오색에 케이블카가 허용됐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이유 때문에 다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하자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상대의 소득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비용이라고만 생각한다. 절대 값을 올려서도 안 되고, 오히려 깎아주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산업이 성장하겠나.
그래서 최소한 중국이 움직이는 만큼만이라도 해야 한다. 중국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보다 빠르다. 우리는 정체돼 있다. 그 나라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케이블카도 못 짓는 나라에서 무슨 관광산업을 한다고 그러나. 관광을 하는 연령층도 생각해야 한다. 환경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나이드신 분들은 현재의 시스템대로라면 제대로 된 관광을 하지도 못한다. 뉴질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관광에 편리한 인프라가 다 구축돼 있다. 그로인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뉴질랜드를 찾는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 서비스산업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서비스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는데, 듣고보니 상당히 답답했겠다.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의료산업을 보자. 의료민영화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의료민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영리병원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병원을 설립하는데 있어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병원사업도 투자의 대상으로 만들자는 것이 의료민영화의 골자이다. 투자는 이익을 내지 못하면 배당을 못 받는다. 투자금을 회수한다 해도 그건 장외나 증시에서 상장된 병원에 대한 주식거래를 통해 원금을 뺀다는 얘기지, 병원에서 돈을 빼 간다는 뜻은 아니다. 잘못된 사실에서 비롯된 인식인 것이다.
또한 병원은 현재 차입이 허용돼 있는데, 이익이 안 나도 차입에 따른 이자는 줘야 한다. 차입은 되는데 투자는 안 되는, 이런 해괴한 규제는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딱 하나다. 자본에 대한 '코스트(비용)'를 원가에 반영해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럼 대형 병원의 틈바구니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개인병원들, 건물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자신들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그런 병원들은 다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그게 결국 과잉진료를 부르는 길이다. 내가 돈을 써야 상대방도 돈을 번다. 내수 진작을 하려면 그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의료업과 같은 복지서비스 분야는 개인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적 기준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은데.
"최악의 선택이 바로 '보편적 복지'다. 사람들은 보편적 복지의 문제점로서 재정 적자를 말하고 있지만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의 한계 때문에 단가를 올려주지 않는 것, 즉 질을 높이지 않는다는 거다. 한 마디로 서비스산업의 하향평준화, 그게 우리 경제를 망치고 있다.
왜 어린이집의 교육이 엉망이라는 지적이 나오겠나. 급여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말은 좋아보이지만 그 고리에 연결돼 있는 모든 사람은 낮은 단가로 인해 돈을 벌 수 없다. 결국 악순환이 거듭될 수 밖에 없다."
- '선별적 복지'가 경제 활성화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뜻인가?
"부유층 50%는 돈을 내고, 빈곤층 50%만 이를 면제해주면 같은 예산을 가지고 급식과 보육의 질을 2배 높일 수 있다. 그걸 왜 선택하지 않나. 지금 방식대로는 절대 질이 높아질 수 없다. 정치권에서 이런 선택의 길을 외면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획일성의 덫에 갇혀있는 것이다. 통상 획일적인 것이 정의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든 문제는 거기서 나오고 있다. 그것을 구태여 선별적 복지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복지의 질을 높이는데 있어 가진 사람들에게는 돈을 낼 수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