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소 위협하는 ‘파란눈’의 甲질…​대책없나

2015-11-05 15:35

대우조선해양이 노르웨이 송가 오프쇼어로부터 수주한 반잠수식 시추선의 건조 현장 모습.[사진=대우조선해양 제공]


아주경제 양성모 기자 = 셰일가스혁명과 원유 증산 등으로 국제유가가 바닥권에 머물면서 글로벌 해양설비 업체들이 갑(甲)질에 나서고 있다. 다 지어놓은 해양설비를 못 가져가겠다며 버티거나 아예 계약위반이라며 취소하는 일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체들이 실직만을 쫓는 무리한 수주경쟁에 나설 것이 아니라, 수주계약 체결 전 법리적·기술적 부분에 면밀한 건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선주측 일방적 농간에 조선업체들만 ‘냉가슴’

지난 4일 삼성중공업은 공시를 통해 올 3분기 846억원의 영업이익 흑자에서 100억원의 영업손실로 재무제표를 정정했다. 지난 달 29일 미국의 퍼시픽드릴링(PDC)이 드릴십 건조계약을 해지했고, 이로 인한 대손충당금으로 PDC측으로부터 받은 1억8110만 달러의 절반인 946억원을 재무제표에 계상했기 때문이다.

해양설비 계약해지로 피해를 본 곳은 삼성만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도 지난 8월 미국의 시추업체인 밴티지드릴링(Vantage Drilling)으로부터 수주받은 약 7000억원 규모의 드릴십 1척에 대해 선주측이 중도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아 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또 1조원 적자의 원흉격인 노르웨이 ‘송가프로젝트’에 대한 추가비용도 현재까지 못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중공업도 2012년 노르웨이의 프레드 올센 에너지로부터 6억2000만 달러에 수주한 반잠수식 시추설비에 대해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특히 선주측은 적반하장격으로 선수금 1억8000만달러의 반환과 이자 지급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런던해사중재협회(LMAA)에 중재 신청을 하거나 가격을 낮춰 되파는 방법, 그것마저도 안된다면 우리가 직접 용선처를 찾아 설비를 빌려주는 방법 외엔 없다”면서 “설비를 되팔 경우 중고선 가격이 현재 업황에 따라 크게 변하는 만큼 헐값에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선주 ‘배째라’ 왜?

이처럼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눈을 뜨고도 코를 베이는 이유'는 법리적 부분과 기술적 부분 등에 대한 인식 및 검토없이 무리하게 수주에 뛰어든 점이 이유로 꼽힌다.

이창희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해양플랜트공사계약과 관련된 법적 쟁점사항에 대한 연구’논문을 통해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와 같은 프로젝트를 수주할 당시 법리적 해석이나 기술적, 관리적, 독소조항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경쟁적으로 수주에만 집중한 점이 이유라고 설명한다.

특히 국내 조선소는 계약상의 상호책임 및 부적절한 계약관리, 인도일자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도면 누락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발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법적 분쟁은 해양플랜트공사가 거의 완성된 시점에서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 조선소는 이에 대비한 관련 자료 및 근거서류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문제 제기의 시효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발주자의 다양한 법적 쟁점사항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이같은 외국 선주의 갑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 분쟁 등 위험이 제외된 EPCM(설계·구매·시공·운영) 계약 또는 양분책임방식의 EPC계약으로 계약방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독소조항에 대한 확인 및 대응방안의 마련이다. 이는 발주자의 까다로운 계약조항 해석과 함께 높은 수준의 기술요구, 고객맞춤형 선형변경에 대한 기술력 등이 부족해 계약의 개별조항들에 대한 기술적, 법적인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국문 해양플랜트 공사계약서 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조선소는 해양플랜트와 같은 비정형화되고, 거래금액이 큰 대형 프로젝트계약에 있어 신속한 거래를 위해 발주자가 작성한 기존의 EPC계약서를 사용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 조선소의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된 국문 표준해양플랜트공사계약서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