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으로] 역사의 생생한 숨결이 느껴지는 곳...중국, 산시성

2015-10-08 05:00
황하문명의 발원지 산시성...살아있는 역사의 '지상박물관'

산시성은 중국의 '지상박물관'으로 불리는 중국 역사의 현장이다. 산시성 이가대원에서 올려다본 하늘. [사진= 김근정]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중국 인류창조 신화의 주인공인 여와(女媧), 뱀의 머리를 한 여신에 관한 ‘여와보천(女媧補天)’이라는 전설이 있다. 평화로운 삶을 누리던 인류는 하늘을 지탱하던 네 기둥이 무너지면서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에 여와는 오색 돌을 녹여 하늘의 빈틈을 메우고 인류를 구원했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곳 중 하나,  중국 황하(黃河)문명의 발원지, 중국 역사의 살아있는 성지, 바로 산시(山西)성이다. 

중국에는 산시성이 두 곳이 있다. 산시성과 인접한 산시(陝西·이하 섬서)성이다. 중국어로는 성조의 차이가 있어 구분이 되지만 한국어 표기는 동일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헷갈린다. 성도 시안(西安)에 있는 진시황릉과 병마용 등의 유명세로 섬서성의 인지도가 높은 것도 착각의 여지를 키운다. 

상대적으로 낯선 산시성을 중국인은 이렇게 소개한다. “만약 섬서성을 중국의 지하박물관이라고 한다면 산시성은 중국의 지상박물관이다, 진짜 중국의 역사와 흔적을 제대로 살펴보고 싶다면 산시성을 찾아라”라고. 실제로 중국에는 "근대 500년 역사를 보려면 수도 베이징으로, 현대를 느끼려면 경제도시 상하이로, 5000년 중국의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만나려면 산시성으로 가라”라는 말도 있다.

산시성을 대표하는 5대 명소로 우타이산(五臺山), 핑야오(平遙)고성, 윈강(雲岡)석굴, 교(喬)가 ·왕(王)가·이(李)가대원(大院·대저택), 황하 후커우(壺口)폭포가 있다. 한 번에 이 모든 곳을 다 둘러 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넒은 대륙의 중국, 그 안에 있는 거대한 성을 제한된 시간 안에 전부 섭렵하는 것은 욕심이다. 아쉬우나마 산시성 일부 명소에 대한 소개로 그 매력을 살짝 맛보기로 하자.  

▲' 옛 것의 보존' '현대와의 공존' 핑야오고성
 

핑야오고성 현청사 앞에 위치한 관풍루, 이곳에 올라서면 핑야오 고성의 모습을 한 눈에 만끽할 수 있다. [사진=김근정 기자]


산시성 성도 타이위안(太原)에서 고속도로로 두 시간여 달리면 핑야오 고성이 있는 진중(晉中)시 핑야오현에 도착한다. 핑야오현은 중국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새롭게 빌딩을 올리느라 시내 곳곳이 분주하고 거리 위에 자동차도 꽤 많다. 화려한 쇼핑몰도 눈에 띈다. 하지만 현대화된 도시 내부, 그 중심은 특별하다. 옛 자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직하고 위용까지 느껴지는 핑야오 고성의 높은 성벽, 성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라는 껍질 속에 숨겨진 눈부신 진주를 만난 것 같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라는 면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핑야오 고성은 14세기 한(漢)나라 시대 고대도시 유적으로 당시 전통양식이 잘 보존돼 있다. 지금의 높은 성벽 조성과 고성 내부 보수작업은 명(明)대에 이뤄져 한나라, 명·청시대 옛 도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국 4대 고성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성벽 둘레만 무려 6k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다. 성벽 높이는 12m, 탑 4개와 72개의 망루, 명·청 시대 주거지 4000채 이상, 옛 상점과 시가지, 사원, 정부청사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목조 건물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5A급 관광명소다.

핑야오고성 중앙에는 핑야오현의 현청사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魏) 나라 시기 세워져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6000여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채 옛 모습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과거 원형을 제대로 보존한 ‘중국 4대 현청사’로 유명하며 현존하는 중국 최대 ‘현 청사’로도 명성이 높다. 현 청사 앞 목조누각인 관풍루(觀風樓)에 올라서면 핑야오 고성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관풍루 위 작은 사당에는 명장 관우가 근엄한 표정으로 성을 지킨다.
 

관풍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오고성 내부 거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생동감있는 고성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사진=김근정 기자]


도시형태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핑야오고성의 또 다른 매력은 단순히 '유적지'가 아니라 현재 핑야오현 주민들의 '주거지'라는 점이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 사이사이 전선줄이 연결되고 관광객을 맞이하며 생업에 고군분투하는, 아직도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다. 날이 어둑해지자 집을 지키는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성내에 울려퍼진다.

핑야오 고성의 야경은 더욱 이색적이다. 곳곳에 붉은 등이 켜지고 잘 계획된 거리는 먹거리 골목, 야간의 '여흥'을 즐길 수 있는 '밤의 거리' 등으로 나뉘어 관광객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쥐죽은듯 고요한 성곽, 과거를 품은 성벽아래 붉은 조명, 그 속에 이 시대를 사는 주민들의 삶과 변화가 있다. 오래된 고택을 개조해 만든 성내 술집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최신 유행가요를 들으며 창문 너머 골목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체험이다. 

▲ 중국이 요동친다, 황하 후커우 폭포
 

중국의 역사가 황하와 함께 요동치는 후커우 폭포.[사진=김근정 기자]


앞서 언급했듯 중국 산시성은 황하문명의 발원지다. 세계 4대문명 중 하나인 황하문명, 그 굴곡진 세월과 역사가 요동치는 곳. 핑야오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여를 분주히 달려가면 후커우 폭포를 만날 수 있다.

후커우 폭포는 동쪽으로는 산시성 린펀(臨汾)시와 서쪽으로는 섬서성 옌안(延安)시와 인접한 4A급 중국 대표 관광지로 국가 지정 지질공원이다. 중국 2대 폭포이자 세계 최대의 ‘황색’ 폭포로 황하답게 맑은 강물이 아닌 흙탕물에 가까운 강물이 거세게 요동쳐 이색적이다.

여름이 지나 살짝 말라 드러난 황토색 대지, 그 위를 우렁찬 소리와 함께 흘러내리는 황토색 강물, '아름답다'라기 보다는 '대단하다' 혹은 '위대하다' 라는 느낌이 가슴에 밀려든다. 단순히 자연의 '풍광'이 아닌 살아있는 중국, 중국의 역사가 휘몰아치는 모습에 관광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후커우 폭포 지층의 지질연대는 2억2000만년 전의 중생대로 추정된다. 후커우 폭포의 생성 역사만도 6만5000년에 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강폭은 400m, 유량은 초당 1000~3000㎥에 달하며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 가장 매력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 진상(晉商)의 대저택, 이가대원
 

산시성 대표 상인, 리쯔융의 자택 이가대원 입구의 모습. [사진=김근정 기자]

 

이가대원 내부 누각에서 바라본 대저택의 전경. [사진=김근정 기자]


명·청 대 중국 상업계는 안후이성의 휘상(徽商)과 산시성의 진상(晋商)이 거의 양분하다시피 했다. 특히 진상은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전국 각지의 돈을 끌어 모았다. 이에 심지어 중국에는 "무릇 참새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산시성 상인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상인들의 세력이 컸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산시성 곳곳에 있는 거상들의 아름답고 거대한 대저택이다. 산시성을 대표하는 3대 대저택으로는 왕가대원, 교가대원, 그리고 이가대원이 있다.

이가대원은 산시성 윈청(運城)시 완룽(萬榮)현에 위치해있다. 청대 부터 중화민국 초기까지 진상 최고 부호로 이름을 날렸던 리쯔융(李子用)의 저택으로 현재 국가 4A급 관광지로 지정돼있다. 사합원(四合院) 형태로 정갈하고 깔끔한, 아름다운 정원과 탁트인 하늘까지 거상의 가세와 위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야말로 대저택이다. 원래는 원락(院落· 울타리를 두른 안뜰) 20개, 방 280칸, 총 건축면적이 10만㎡ 이상에 달했지만 현재는 11개 원락과 146칸의 방만 남아있다.

이가대원은 우리에게 여배우 채림으로도 익숙하다. 채림이 2013년 방영된 중국 드라마 ‘이가대원’에 출연했고 이 드라마 촬영에서 남편 가오쯔치(高梓淇)와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가오쯔치는 리쯔용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으로, 채림은 그의 부인으로 열연했다. 이가대원을 거닐다보면 드라마 촬영 사실을 소개하는 포스터와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한국 여배우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