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신경제가 답이다
2015-08-19 11:36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1990년대 미국은 ‘신경제’(New Economy) 호황에 취해 있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신경제 호황 탓에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고, 여러 가지 스캔들에도 임기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의 ‘신경제’는 높은 경제성장과 지속되는 경기호황하에서도 물가는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경제현상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 정보통신기술 보급에 따른 범위의 경제, 수확체증의 법칙, 네트워크 효과 등 과거와 다른 경제법칙이 적용되는 것 역시 ‘신경제’의 특징이었다.
한국도 과거 ‘신경제’의 덕을 봤다. 컴퓨터와 인터넷, 정보통신 기술의 보급은 한국에서 충분히 빠르게 이뤄졌다.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의 보급을 토대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에 있어서 애플과 함께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945년 해방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는데, 70년 이후 지금은 최첨단 핸드폰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신경제는 평생 신경제가 아니다. 클린턴이 누렸던 긴 호황은 부시에게는 부담이 됐다. 전임자가 물려준 환상속에서 정신을 못차린 부시에게 찾아온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혹독함뿐이었다.
2015년 현재 누구도 정보통신기술의 보급과 그에 따른 새로운 경제현상을 ‘신경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1990년대 당시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지만 지금은 확립된 기존 패러다임이 돼버렸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면 언제든 자리를 내줘야 할 입장이다. 전기와 철도가 보급되고, 전화와 자동차가 대중화되던 시기에도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이 초래한 신경제 역시 사회를 총체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순항했다고 할 수 있는 한국경제의 앞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중국은 수출중심의 고도성장을 포기하고, 내수 활성화와 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미국은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기치하에 해외로 나갔던 공장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일본은 20년 불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아베노믹스와 엔화 약세라는 무리수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을 둘러싼 경제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이다.
中-日 사이의 샌드위치처럼 답답한 작금의 상황이야말로 ‘신경제’가 꼭 필요하다. 지금 한국경제에 필요한 ‘신경제’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신경제’가 아니다.
기존 한국경제가 익숙해 있던 패러다임과의 결별, 즉 과감한 환골탈태라는 의미에서 훨씬 더 깊고 넓은 의미의 ‘신경제’다. 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고, 도전적인 벤처기업이 더 많이 생겨나고, 이들이 한국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해야 한다. 기술집약형 글로벌 강소기업과 기존 대기업이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규제 시스템은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바꿔야 한다. 안 되는 것 몇가지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가능하게 해서 문호를 개방하고 경쟁을 확대해야 한다.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면서 사회적 책임은 소홀히 하는 기업은 도태돼야 한다. 종업원과 경영진, 주주와 고객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행복한 기업이 존경받아야 한다.
부동산은 물론 대표이사를 담보로 잡아왔던 대출 관행은 기술력과 사업성에 대한 평가 중심으로 교체돼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의 토대 위에서라야 제2의 이병철, 제2의 정주영처럼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벤처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기술집약형 글로벌 강소기업이 한국경제의 중심이 되는, 좀더 포용적인(inclusive) ‘신경제’야말로 2015년 이후 한국경제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비전이다. 광복 70년 이후의 새로운 70년은 ‘신경제’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