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인구보다 많은 휴대폰
2015-08-12 14:25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곧 8.15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날이다. 아쉽지만, 남북 분단의 70년이기도 하다. 게다가, 경제 기적의 70년이기도 하다. 7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요즘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에서 13번째로 크다. 수출입을 합친 무역규모로는 세계 7위다. 70년 전에 비하면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휴대폰과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분야가 특히 그렇다. 스마트 폰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등 정보통신 분야의 경쟁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휴대폰 가입자가 인구를 추월했다. 2012년 말 현재 휴대폰 가입자 수는 5363만 명에 달한다. 유치원 꼬마들도 들고 다닌다. 1주일에 1시간이라도 돈을 벌기위해 일한 사람을 취업자라고 하는데, 2500만 명 정도 되는 취업자의 2배가 넘고, 갓난아기를 포함해서 2012년의 인구 5021만 명보다 더 많다.
이 휴대폰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선을 보인 것은 1984년경이다. 31년 전이다. 198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공기업이 차량용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한국통신의 자회사였고, 이 때 가입자 수가 2658명에 불과했다. 이 당시 휴대폰을 만든 회사는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등 국내 회사가 아니라 모토롤라라는 미국 회사였다. 그 당시에는 들고 다니면서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카폰이라고 불렀는데, 고급 자동차에 장착되어 있었고, 크기는 벽돌만하다고 해서 벽돌폰이라고도 불렸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완만하게 증가했는데, 1996년도에 016, 018, 019 번호를 사용하는 통신회사가 3개 더 시장에 진입하면서 서비스 경쟁과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휴대폰 가입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 500만명, 1998년에 1000만명, 1999년에 2000만명, 2002년에 3000만명, 2006년에 4000만명, 2010년에 5000만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경쟁은 좋은 것이다. 정부가 펼친 경쟁 활성화 정책의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휴대폰이 똑똑해졌다. 처음에는 음성 전화하고, 문자만 주고받던 휴대폰이 이제는 웬만한 컴퓨터처럼 스마트해졌다. 인터넷 접속해서 검색하고 신문보고, 자료 뽑아내고, 이메일 체크하고, 은행 계좌로 송금하고, 주식 거래하고, 게임하고, 페이스북이나 카톡으로 실시간 문자를 주고 받고, 정류장에서 버스 앱을 켜면 집으로 가는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알 수 있다. 컴퓨터보다 더 편리하다. 이처럼 똑똑해진 스마트폰의 기능 자체가 휴대폰 가입자를 늘리는데 기여했고,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니까 다시 휴대폰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는 등 서로 선순환 효과를 발휘했다.
휴대폰에 밀려서 요즘은 유선전화가 천대를 받고 있지만, 70년 전 해방 당시에는 전화가 귀했다. 1960년대에 유선전화 가입률이 0.3%에 불과했다. 1000명 중 3명 정도만 전화가 있었다. 당시 우유 빛깔의 백색전화는 고급스런 명품 가구처럼 애지중지했고, 서비스를 신청하면 몇 달씩 걸렸고, 전화 채권을 사는 등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던 시절을 지나 요즘은 비싼 휴대전화의 숫자가 인구보다 더 많아졌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 역시 격세지감이다. 큰 걱정거리다. 많고 편리해진 휴대폰으로 하루 한번씩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