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삼성가 비운의 황태자'…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2015-08-17 00:01

[사진제공=CJ그룹]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한때 우리나라 재계를 호령하던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사인은 폐암이었다. 2012년 말 폐암 판정을 받은 이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암이 두 차례 재발해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방사선 치료 등을 받아야 했다. 최근에는 베이징에 머물며 투병 생활을 했지만,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동생인 이건희 회장도 비슷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1976년 위암을 발견하고 수술까지 받았지만 10여 년 만에 폐암을 선고받았다. 결국, 폐암 후유증으로 향년 77세에 별세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도 1999년 폐 부근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았고, 그 후에도 몇 차례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바 있다.

'삼성가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고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이며 형제자매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외에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이 있다.

동생인 이건희 회장과 틀어진 사이는 끝내 회복하지 못 했다.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이들 형제는 법정 다툼까지 벌이며 45년 동안 서로에게 마음의 벽을 쌓았다.

이 명예회장은 한때 삼성그룹 후계자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실제로 단기간이지만 삼성의 총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진 것이 계기가 됐다.

울산에 공장을 짓던 삼성 산하 제일비료가 사카린을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가 들통이 났다. 당시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꿈꾸던 이병철 선대 회장은 결국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났고 고인에게 삼성의 지휘봉을 맡겼다.

1960년대 고인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제당 등 무려 17개 주력 계열사의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을 맡았다.

하지만 경영 스타일과 관련해 아버지와 자주 이견을 보여왔다. 결국, 이병철 회장이 1976년 일찌감치 삼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이맹희 회장의 삼성그룹 내 위상은 대폭 축소됐다.

이후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한 뒤 1980년대부터는 계속 해외에 체류하며 삼성그룹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해외에서 '은둔의 생활'을 하던 고인은 2012년 2월 동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7000억원대의 유산분할 청구소송을 내면서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명예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차명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몰래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삼성생명 주식 425만9000여주, 삼성전자 주식 33만7000여주, 이익 배당금 513억원 등 총 94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인도하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상속회복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고 재산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연달아 패소한 이맹희 명예회장은 2014년 2월 26일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주위의 만류도 있고, 소송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 간 관계라고 생각해 상고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소송 도중 형제간 화해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이 명예회장은 결국 동생과의 화해 방법을 찾지 못했고 타국에서 주검이 되어 돌아오게 됐다. 이건희 회장도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마지막 가는 길 역시 쓸쓸했다. 자식들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 했다. 장남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내인 손복남 CJ그룹 고문과 슬하에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있다.

이 명예회장의 장례식은 이채욱 CJ주식회사 대표를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CJ그룹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중국 정부와 협의가 당초보다 빨라져 이 명예회장의 시신 운구는 이번 주 초로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에 마련할 예정이며, 빈소 조문은 18일부터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