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리랑' 1920년대 시대상을 반영하다

2015-08-02 12:04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공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 “니는 꽃이여. 이러지마”

방수국은 미선소에서 일본 감시원들의 지시 하에 쌀알을 고른다. 수국은 일을 하던 중 미선소의 일본 앞잡이 감독관에게 유린을 당한다. 충격에 빠진 그는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고, 수국을 사랑한 차득보는 이를 애타게 만류한다.

대형 창작 뮤지컬 ‘아리랑’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뮤지컬 ‘아리랑’은 일제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한 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 이민사를 다룬 조정래 작가의 대하 소설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다. 다만, 시대적 배경은 원작의 범위가 너무 넓어 1920년대 말까지로 제한됐고, 스토리는 감골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맞춰졌다.

이 공연은 1920년대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에 있던 조선의 민초들이 겪었던 수모를 그리고 있다.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모녀부터 민족을 배반한 변절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을 묘사하고 있다.

모녀인 감골댁과 방수국의 만남은 절절하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감골댁은 검은 저고리를 입고 상상 속에서 방수국을 만난다. 방수국은 임신한 몸으로 감골댁을 붙잡기 위해 힘겹게 손을 뻗어 보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다.

머슴 출신에서 일본의 앞잡이가 된 양치성은 조선시대 신분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남들에게 무시 받던 삶을 살던 양치성은 변절자로 돌아선 후 앞장서서 조선인을 탄압한다. 같은 민족을 억압하는 그의 모습에서 분노와 함께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뮤지컬의 연출을 맡은 고선웅 씨는 지난 기자 간담회에서 소설 ‘아리랑’을 뮤지컬로 만드는 데 겪었던 어려움을 고백하기도 했다.

고선웅 씨는 “부담이 많이 됐다. 부담을 내려놓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소설에 충실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소신과 확신을 갖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우 안재욱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의식 있는 양반이자 뮤지컬의 주인공인 송수익을 연기했다. 그 또한 뮤지컬 ‘아리랑’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안재욱은 “어느 민족이든 역사가 있고 즐겁고 아팠던 과거 있다”면서 “이 작품은 아팠던 과거를 지금 보여줌으로써 같이 속상해 하자는게 아니라 지금 힘들지만 돌파할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마지막 부분에서 조선 백성들과 일본군들은 한데 어우러져 아리랑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일본군들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조선인들은 이를 용서한다. 그렇게 뮤지컬 ‘아리랑’은 1920년대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를 기억하고,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