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경영시대 도래]SK하이닉스와 CJ대한통운이 웃는 이유는?
2015-07-29 13:22
(1) 오너의 선택, 판세를 뒤집었다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11년 8월 27일. 이날은 대한통운 인수를 위한 본입찰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는 날이었다.
매각 주간사인 노무라증권에는 일찌감치 참여할 것이라고 공헌했던 포스코-삼성SDS컨소시엄, CJ그룹, 롯데그룹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채 오후 5시인 마감시간까지 최대한 기다리며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감 5분여를 남겨놓고 롯데가 입찰 포기를 발표하자 포스코-삼성SDS컨소시엄이 제안서를 제출했고, 이어 CJ그룹도 서류를 냈다.
포스코는 승리를 확신했다. “삼성이 있으니 크게 썼다”는 말을 꺼낼 정도였다. 하지만 하루 뒤 노무라증권은 CJ의 손을 들어줬다. 채권단이 대한통운 매각 공고를 냈을 때 적정 인수가격은 주당 15만원대,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17만원 내외였다. 포스코는 주당 19만원대를 제시했다. 포스코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그런데 CJ는 21만원대를 썼다.
후일 당시의 상황에 대해 CJ를 퇴사한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CJ직원들은 봉인된 여러개의 봉투를 들고갔다고 한다.
이어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에는 대한통운 인수가격 고액 논란으로 쉽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7월 STX가 참여를 선언하자 곧바로 SK그룹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9월 STX가 이찰 참여 포기를 선언했고, 넉달 후인 11월 10일 SK그룹의 인수주체인 SK텔레콤은 예정대로 제안서를 제출,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금액은 총 3조4267억원이었다.
두 회사는 지금은 각각 CJ대한통운과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바뀌었으며 양 그룹의 주축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당시 4년전만 해도 두 그룹의 인수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양 그룹 내부에서도 인수후 부정적 효과 때문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한통운과 관련, CJ그룹과 포스코와의 주당 인수가격 차이는 2만원이었다. 재계에서는 2만원의 차이를 오너체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라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는 그룹을 먹여살려야 하는 무한책임을 갖고 있다. 무한책임은 언제라도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는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갖겠다는 의지를 전문경영인이 보이기 힘든 게 한국의 기업 풍토다. 삼성을 우군으로 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패배한 이유이자 이재현 회장이 승리한 비결이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도 비슷한 맥락에서 인수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또 다른 재계 고위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양대축으로 하는 SK그룹에게 있어 반도체는 전혀 다른 사업으로 비춰질 수 있다. SK그룹 내에서 반대한 이유다. 하지만 좀 더 깊게 고민해 보면 석유화학사업에서 반도체 원재료를 만들어내고 ICT사업은 반도체의 수요를 창출한다”면서 “인수·합병(M&A)으로 커온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로 또 다시 특혜를 얻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SK최 회장은 유화와 ICT에 이어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를 키워내겠다고 역설했다.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접근해 하이닉스 인수의 명분을 제시한 것이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재벌의 소유와 경영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 오너 체제에서 전문경영인체제로의 패턴 변화는 필연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SK그룹과 CJ그룹은 현재 오너부재의 위기 상황속에서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들이 뚝심을 발휘해 인수한 두 기업은 현재 양 그룹을 받쳐주는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업에 대한 결단력과 추진력이 올바르게 전개됐을 때 오너경영의 효과는 전문경영인체제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