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맞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끝내 사퇴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유승민 찍어내기'를 공언한 지 13일만이다. 집권 여당이 '유승민 카드'를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야한다고 했지만, 내년 총선이 도래하기도 전에 새누리당이 먼저 그를 심판한 것이다.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배신의 정치'의 말로가 이토록 참담한 '정당의 배신'이었을 지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상황이 8일 벌어졌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에 따른 원내대표 책임론' 이었지만, 그 속내는 당내 계파갈등이 격돌하다 끝내 유 원내대표를 희생양 삼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 4시간이 넘는 마라톤 난상 토론 끝에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권고'라는 사상 초유의 결론을 내렸다.

의총에서는 한때 '표결'로 결론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새누리당은 '이의없이' 박수로 사퇴 권고 결정을 내렸다. 김무성 대표는 이 같은 의총 결과를 들고 유 원내대표 방으로 찾아가 직접 전달했다.

의총 결과를 받아든 유 원내대표는 전날 밝힌대로 깨끗히 의총 결과에 승복,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회법 개정안 위헌논란으로 촉발된 자신의 거취 문제를 담담하게 '결자해지'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사퇴는 지난 2월2일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후 156일만의 '중도하차'다. 또 지난 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언급한 지 13일만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면서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친박계의 거센 사퇴 요구에도 오랜 기간 사퇴 선언을 하지 않은 것과 관련, "내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은 "사퇴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지난 2주를 버텨온 유 원내대표의 일관된 발언의 연장선상으로, 원내대표 자리를 지키는 것이 헌법에서 규정한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가치는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유 원내대표는 지난 4월 자신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언급하며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른바 '유승민 정국'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로 인해 일단락됐지만, 향후 당내 계파 갈등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속 원내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새누리당 당내 갈등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이와함께 유 원내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려 한 보수에 대한 진영논리가 가세할 경우 정계 개편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