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오늘 국민투표…찬·반 어느 쪽이든 '비극'

2015-07-05 12:49
찬성, '3차 구제금융안' 협상 재개…치프라스 퇴진 가능성
반대, "채무 탕감 합의" vs "그렉시트"

[사진=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페이스북]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찬성’표가 나오면 그리스는 구성원이 바뀐 새 협상단과 다시 길고 지루한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따라올 연금축소·증세 등 과감한 경제개혁을 그리스 정부가 이행할지도 불확실하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 추가 협상에 더욱 심각한 난항이 예상된다. 야당과 채권단 등은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채권단 구제금융안 ‘찬성’, 협상 주체 논란…시리자 실각 위기

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오면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부친 안건인 협상안은 ‘2차 구제금융 5개월 연장안’이다. 협상 결렬로 2차 구제금융은 지난달 30일 종료됐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뜻대로 120억유로(약 13조원)를 지원받는 구제금융 연장안에 합의할 수 없고 지난달 30일 제안한 ‘3차 구제금융’ 협상이 이뤄지게 된다.

문제는 채권단과 그리스가 갈등을 내려놓고 다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느냐다. 앞서 유로그룹은 이 제안을 놓고 두 차례 긴급회의를 열었으나 투표 이후로 미뤘고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과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도 이 제안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협상의 주체도 논란 대상이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찬성이 나오면 바로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협상 지연으로 그리스가 오는 20일 유럽중앙은행(ECB)에 부채 35억유로를 상환하지 못하면 디폴트와 긴급유동성지원(ELA) 중단 등 그리스는 파국을 맞게 된다.

치프라스 정권의 운신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쇼이블레 장관은 “국민투표가 결과가 찬성이든 반대로 나오든 유로존과의 ‘신뢰’가 무너진 치프라스 정권과는 향후 어떤 협상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찬성’이 우세하면 총리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국민투표가 통과돼 치프라스가 물러나는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보도했다. 조기 총선을 통해 친 유럽연합 정권이 들어오길 바라는 것이다. FT는 “메르켈은 국민투표를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총리가 사퇴하면 야당을 포함하는 거국적 과도정부가 들어서 채권단과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3일 “찬성이 나오면 현 정부를 대신해 채권단과 협상할 기술관료 주도의 과도정부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며 “협상을 타결한다면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 집권은 종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도정부 구성도 현재 그리스 정치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과도정부가 수립돼도 총선은 불가피하다. 현재로써는 시리자의 지지율이 가장 높아 총선에서 시리자가 재집권할 수도 있다.

◇ 반대, ‘그리스 미래’ 열쇠 쥔 ECB…그렉시트 가능성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만일 ‘반대’가 이긴다면 이튿날 나는 브뤼셀에 있게 될 것이고 협상은 48시간 내 타결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IMF가 2일 발표한 ‘부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부채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30% 부채탕감(헤어컷)과 20년 유예”라며 “반대 결과는 채권단을 압박하게 될 것”고 덧붙였다.

설령 치프라스 총리가 자신의 계획대로 국민투표 결과를 배경으로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더라도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반대’표가 우세하면 협상이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ECB에 관한 채무 35억유로의 만기가 돌아오는 20일까지 합의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가 ECB 채무를 갚지 못할 경우 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이 끊겨 그리스 은행이 무너질 수 있다. 금융체계가 붕괴하면 그리스 정부는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그렉시트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야당, 채권단의 논리다.

다만 독일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당분간 유로화를 갖지 않아도 유로존 회원국으로 있을 수 있다”고 밝혀 차용증서인 ‘IOU’를 발행하고 3차 구제금융 협상을 계속할 수 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에 “우리는 부도를 낸 유로존 국가와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대 결정에 따른 3차 구제금융 타결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렉시트는 유로존에 경제적 손실은 물론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루파키스 장관은 스페인 일간 엘문도와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붕괴했을 때 1조유로(약 1247조5000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며 “채권단이 그렇게 되기까지 내버려둘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유로존 내 그리스 지위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한편 그리스의 국민투표는 1974년 입헌군주제를 공화정 체제로 전환할 때 치른 이후 41년 만이다.